소화제 말고는 위장약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나이 탓인지 스트레스 탓인지 두 주째 약을 먹고 있다. 그 사이에 속이 타들어간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도 알게 됐으니 소득이 없진 않다. 이런 것도 '오후 4시'의 풍경에 속할까. 인생을 하루로 잡았을 때의 오후 4시. 저녁은 아니지만, 햇볕 좋던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린 바로 그맘때. '옥상화가' 김미경의 <서촌 오후 4시>(마음한책, 2015)의 느낌도 그러하다. <언니의 독설>의 저자가 아닌 <브루클린 오후 2시>(마음산책, 2010)의 저자다(공저로는 <왓더북?!>도 있다).

 

 

첫번째 책과 두번째 책 사이에 두 가지 이동이 있었다. 공간적으로는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서울 서촌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는 오후 2시에서 오후 4시로. 덧붙여 저자의 나이는 쉰 살에서 쉰 다섯으로. 그러한 변화를 저자 자신이 의식하고 있다. 새책의 머리말이 '브루클린 오후 2시, 서촌 오후 4시'란 제목을 갖고 있으니까. 아직 좋았던 시절에 대한 느낌을 <브루클린 오후 2시>에서는 이렇게 적는다.

하루로 친다면 내 인생은 막 오후 2시쯤에 온 게 아닐까 싶다. 하루 중 '가장 뜨겁고 화려한' 오후 2시.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속으로는 가장 뜨겁고 풍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브루클린 오후 2시>다.

그렇게 뜨겁고 화려한 시간이지만, 오후 2시는 이제 해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2년 뒤 저자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3년 뒤에는 옥상에서 서촌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5년 전에는 '1억년 후 나는 화가다'라고 호기롭게 예언했지만 턱없이 빗나갔다. 그 사이에 1억년이 흐른 게 아니므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책은 그 일에 대한 기록이고 보고다.

 

이 책은 도대체 그 화학작용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왜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우리 나이로 쉰여섯 살인 내가 왜 회사를 뛰쳐나와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어진 것인지, 길거리에서, 옥상에서 그림 그리며 나는 어떤 세상을 만나고 있는지, 내가 그리는 서촌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떻게 한 발짝 한 발짝 화가가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변화를 기록하고 있어서인지 서촌의 풍경을 정물화처럼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이내믹하다. 오후 4시의 리듬, 혹은 오후 4시의 율동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1억년 뒤에도 화가가 될 리 만무하다고 생각하지만, 위장의 오후 4시를 맞이하여,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슬쩍 해본다. 속쓰림을 달래려면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르더라도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익숙한 것과의 결별? 하루에 몇 잔씩 마시던 아메리카노와 결별한 지도 이주째로군. 오후 4시는 담담하게 허전하다...

 

15.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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