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의 새책이 나왔길래 뭔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원본, 곧 오리지널이다. 카버의 경우 편집자가 손을 많이 댄 작가로도 유명한데, 그에 대해 작가로선 유감이 없을 리 없다. 영화에서 '디렉터즈 컷' 비슷하게 '라이터즈 버전'도 있는 것. 생전에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사후에 남편의 뜻을 따른 아내를 통해서 원본 <풋내기들>(문학동네, 2015)이 나왔다는 얘기다.

 

레이먼드 카버의 두번째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원본이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포함된 17편의 단편이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실렸다. 1981년, 당시 크노프 출판사의 편집자였던 고든 리시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편집 과정에서 카버의 원고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일부 작품의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거의 모든 단편의 엔딩을 바꾸거나 잘라냈으며, 분량의 70퍼센트 이상을 덜어낸 단편도 있었다. 편집된 원고를 받고 몹시 당황한 카버가 원래대로 되돌려줄 것을 부탁하며 괴로워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결국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고든 리시의 편집본으로 출간되었고, 카버는 언젠가 오리지널 버전의 원고로 책을 출간할 것을 다짐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2009년, 카버의 미망인 테스 겔러거가 너무 빨리 고인이 된 남편의 오리지널 버전 원고를 모아 <풋내기들>을 펴냈다.

 

해서, 같은 책의 두 가지 버전을 우리도 읽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한번 읽은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게 됐다는 점. 카버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숙제라고 해야 할까. 흥미로운 대목들이 발견되면, 대학 강의실에서도 토론 거리로 삼을 만하다. 내가 창작을 가르친다면, 한 학기 동안 이 작품을 같이 읽어나가는 강의계획안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숙제는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개정판이 나오면서 절판되긴 했지만 김연수 작가가 재번역본을 내면서 <대성당>의 경우에도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개별 작품으론 물론 서너 가지 버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건 번역학 강의실에서 교재로 삼을 만한 사례다.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세계 명단편 강의도 해보고 싶다.

 

 

게다가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시리즈를 완독하고 나면, 비교 거리도 갖게 될지 모른다(한달에 한권씩 읽기로 했다. 상반기엔 3권까지다). 나이는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해마다 할일은 서너 가지씩 늘어나는군...

 

15.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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