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은 책마을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만한 제목인데,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출간됐다. 처음 나온 <자발적 복종>(울력, 2004)이 독어판의 번역이라면, 이번에 나온 <자발적 복종>(생각정원, 2015)은 불어판 원전을 옮긴 것이다. 저자는 16세기 프랑스의 재판관이자 철학자였던 에티엔느 드 라 보에시(처음엔 '보에티'라고 소개됐었는데, '보에시'라고 발음되는 모양이다). 몽테뉴의 절친으로 33살에 요절하면서 모든 원고를 몽테뉴에게 넘겼지만, 몽테뉴는 <자발적 복종>만은 끝내 출간할 수 없었다. 이 '위험한 문건'을 썼을 때 보에시의 나이는 24세였다. 기회가 닿아 미리 읽고 내가 적은 추천사는 이렇다.

 

몽테뉴의 시대는 우리에게 <수상록>만 남겨준 게 아니었다. 몽테뉴가 차마 출간할 수 없었던 라 보에시의 격문 <자발적 복종>은 16세기의 정신이 여전히 우리의 친구라는 걸 말해주는 생생한 사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며 복종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무엇이 자유를 가로막는가. 타성적 습관과 자유의 망각이다. 그리고 주입된 공포를 더할 수 있으리라. 라 보에시는 다시금 선택적 상황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자발적 복종인가, 자유인가. ‘이대로!’인가, ‘더 이상 이대로는 지속될 수 없다!’인가. 자유에 대한 두려움의 주술에서 벗어날 때다. 

 

생각난 김에 적자면, 몽테뉴와 그의 시대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인 홋타 요시에의 <위대한 교양인 몽테뉴>(한길사, 2005)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 보에시와 몽테뉴의 우정에 관해서도 읽어볼 수 있을 듯한데, 나로선 이 책을 찾는 것도 당장은 일이다.

 

 

더불어, <자발적 불복종>과 짝이 될 만한 책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데, 바로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이다. "<시민의 불복종>은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해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소로우가 옥고를 치룬 후 써내려간 짧은 '감옥기'이자 인간이 자유로운 주체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부에 대한 자유로운 개인, 시민의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다."

 

16세기 프랑스인과 19세기 미국인이 던진 물음에 21세기 한국인이 답할 차례다...

 

15.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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