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와 발터 벤야민의 책이 재출간된 김에 알랭 바디우와 묶어서 '이주의 저자'로 삼는다.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바디우의 책은 신간이다.  

 

 

먼저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난장, 2015). 동문선판이 1998년에 나왔었으니까 17년만에 나온 새 번역본이다.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는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졌는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제의 강의는 1975-76년 학기에 이루어졌다. 직전 강의가 <비정상인들>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강의가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시리즈는 난장에서 나오고 있는데, <비정상인들>도 아마 새 번역본이 나오는 걸로 안다. 예정돼 있는 전체 13권 가운데 난장판으론 4권이 나왔고, <비정상인들>과 <주체의 해석학>을 포함하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건 6권이다.

 

 

얼마전에 나는 실제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분기에 한권 정도씩 읽어나갈 계획을 세웠는데,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은 <주제의 해석학>(동문선, 2007)이다.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이제이북스, 2014)를 다룬 대목들이 나오면서 독서를 미룬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플라톤 전집판으로 나온 <알키비아데스>를 참고할 수 있으니 독서의 조건이 훨씬 좋아졌다. 경험상 가능하다면 영어본의 도움도 받는 게 독서를 수월하게 해준다. 이 강의 시리즈 대부분이 영어본으로 나와 있고, 나는 그 중 절반을 갖고 있다. 러시아어판도 상당수가 출간돼 있는데, 책값이 좀 센 편이어서(지금은 책값보다 배송료가 더 들겠지만) 나는 한두 권만 구입했던 듯하다. 그건 그렇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어떤 의의가 있는 책인가.

지난 1997년 출간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중 처음 공개된 것으로서 ‘푸코 르네상스’의 기폭제가 된 책이다. 이 책에서 푸코가 권력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제시한 ‘생명권력/생명정치’ 개념은 수많은 후속 연구를 낳으며 동시대 정치철학의 패러다임을 혁신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생명권력/생명정치’ 개념이 워낙 많이 회자된 탓에 사람들은 이 개념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의 주요 테마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정작 이 책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권력관계의 새로운 분석틀로서의 ‘전쟁’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즉, ‘전쟁’(혹은 전투, 내전, 침략, 반란, 봉기 등)이야말로 우리의 역사와 사회, 그리고 향후 전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주장이 이 책의 핵심 테마인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길, 2015)가 '발터 벤야민 선집'판으로 다시 나왔다. 그린비판이 2005년에 나왔었으니까 10년만의 개정판이다. 개인적으로는 모티터링도 하고 몇년 전에는 모스크바에 가서 책에 대한 칼럼도 쓴 적이 있기에 인연이 없지 않다. 영어판과 러시아어판도 모두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행방을 찾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다시 모아놓아야겠다. 이 책, 혹은 일기에서 어떤 벤야민을 만날 수 있는가.

벤야민은 많은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편지들에서 사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 편지들은 수신자들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 그의 진솔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스크바 일기>는 우리에게 이론가 벤야민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인간’ 벤야민에게 접근해갈 통로를 마련해준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을 떠올리는 가장으로서의 벤야민을 만난다. 그 벤야민은 램프를 고치려다 합선을 일으키고, 무거운 짐을 든 채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 다니며, 찾던 물건을 발견하면 아이처럼 기뻐하는 서투르고도 천진한 인물이며,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다른 남자를 신경 쓰고, 그녀와의 이별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룸메이트에게 토라져 말을 안 하는 갑갑하리만치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요컨대 가장 인간적인, 혹은 가장 나약해보이는 인상의 벤야민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와도 많이 닮은 가장 친근한 벤야민일 수도 있겠다.

 

 

지난해에는 문광훈의 <가면들의 병기창>(한길사, 2014), 권용선의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역사비평사, 2014), 최성만의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길, 2014) 등 국내 학자들의 벤야민 연구서와 소개서가 여럿 출간됐었다. 올해도 선집의 추가적인 목록 외에 어떤 책이 더 나올지 궁금하다.

 

 

한 가지 바램을 적자면, 영어판 발터 벤야민 선집의 편집자이기도 한 마이클 제닝스 등의 평전 <발터 벤야민>(2014)도 번역되면 좋겠다. 몸메 브로더젠의 <발터 벤야민>(인물과사상사, 2007)과 게르숌 숄렘의 <한 우정의 역사>(한길사, 2002)보다 훨씬 자세한 평전이어서다. 짐작엔 번역이 진행중일 듯싶지만.

 

 

끝으로 바디우. 소품이긴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주제와 더불어 알랭 바디우의 철학에 이해에도 꽤 유익한 책이 출간됐다. <알랭 바디우, 공산주의 복원을 말하다>(숨쉬는책공장, 2015). 독일 파사젠출판사의 대담 시리즈 가운데 첫 권인데(둘째 권은 자크 랑시에르라고 한다) 출판사 발행인이자 대담자인 페터 엥겔만은 바디우를 비엔나로 초청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이 출판사의 창립 25주년 행사가 2012년 3월에 비엔나에서 있었고 바디우는 이때 엥겔만과 두 차례 대담을 가졌다). 영어판도 <철학과 공산주의 이념>이란 제목으로 올해 출간된다.

알랭 바디우는 몇 년 전부터 주로 공산주의 이념의 귀환에 대한 요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주장 때문에 그는 오늘날 슬라보예 지젝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격렬하게 논의되는 동시대 정치철학자가 되었다.

그런 계기가 된 것이 바디우의 <공산주의 가설>이고 이후에 지젝과 함께 주도하고 있는 공산주의 포럼(재작년에는 한국에서 개최돼 한국을 다녀갔다)의 결과물이 <공산주의 이념>이란 제목으로 출간되고 있기도 하다.

 

 

이 시리즈도 소개되면 좋겠다. 작년인가 확인해봤을 때는 의외로 관심을 가진 출판사가 없었는데, 그래도 그 사이에 번역에 나선 출판사가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15.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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