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실종자>를 찾느라 방안의 책을 300권 가량 베란다로 옮겨놓으며 한 시간 동안 일을 벌였지만 결국은 또 찾지 못했다. 자주 벌어지는 책과의 숨바꼭질이지만, 책을 찾는 건 반타작에 그친다. 한 시간 더 투자하면 찾을 확률은 좀더 오를지 모르겠는데, 혹시나 그래도 못 찾을까봐 겁이나 일단은 철수하면서 그런 수색작업 중에 발견한 책 두 권에 대해 적는다. 이굴기의 <꽃산행 꽃시>(궁리, 2014)와 신준환의 <다시, 나무를 보다>(알에이치코리아, 2014)다. 둘다 식물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저자가 적접 찍은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는 게 공통점.

 

 

'이굴기'란 저자명은 생소한데, 약력을 보니 이갑수 시인의 필명이다. 시인이면서 출판인으로 바로 책을 낸 궁리출판사의 대표다. 오랜 전이고 이미 절판됐지만 <신은 망했다>(민음사, 1991)란 시집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오늘의 작가상' 수상시집이었다). 이후에 <현대적>(민음사, 1994)이란 시집도 냈지만(이 역시 절판됐다) 상당 기간 저자로는 활동이 없다가 <인왕산 일기>(궁리, 2010)와 <신인왕제색도>(궁리, 2010)를 나란히 펴낸면서 시인이 아닌 산문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고, 산문집 <오십의 발견>(민음사, 2013)을 거쳐서 <꽃산행>에 이르렀다. 책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것인데, 지금은 따로 경향신문에도 '꽃산 꽃글'을 연재하고 있다고. 저자가 서문에 적은 바는 이렇다.  

지난 3년간 제법 많은 산을 돌아다녔다. 그동안 꽃산행을 하면서 꽃도 꽃이지만, 꽃이 자연에서 처한 자리에서 엮어내는 풍경에도 주목을 해왔다. 아니 꽃만이 아니었다. 그것이 없다면 도무지 자연이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을 벌레나 곤충은 물론 지형과 바위 등의 무정물에서도 특별한 감흥을 느꼈다. 고마운 것은 이 특별한 상황에 걸맞게 내가 읽었던 시 한 편이 맞춤하게 찾아와 준다는 점이었다. 이런 사정을 맞닥뜨리기 훨씬 이전에 그러한 시심(詩心)을 일구어낸 시인들께 탄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목에 '꽃시'도 들어간 것. 저자는 "식물에 관한 한 아직 초보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대학에서 식물학을 전공했으니 아주 무연한 건 아니겠다. 겨울이라 지금은 식물원에나 가야 꽃을 볼 수 있겠지만, 봄이 오기 전에 저자와 함께 사계절 '꽃산행'을 따라가보는 것도 그럴 듯하겠다. 

 

 

<다시, 나무를 보다>는 <자연이 향기 속으로>(동아일보사, 2007), <숲이 희망이다>(책씨, 2009) 등의 공저를 펴낸 저자의 단독 저서다. 부제는 '전 국립수목원장 신준환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 "30여 년간 나무 연구자로 살아온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 시대의 독자들에게 인류의 오랜 지혜자 나무의 철학을 전하는 책"이다(구성도 '나무의 인생학', '나무의 사회학', '나무의 생명학' 세 부로 짜여졌다). 국립수목원장을 역임했다면, '나무의 지헤'를 전달해줄 중개자로 최적격이지 않을까. 고은 시인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깨달음의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뒤늦게 나마 철이 들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치 나무 이야기가 나무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우주와 인생 그리고 자연의 철리에 오묘하게 맞닿아 있다. 과연 나무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였다. 하나 더 지적할 바는, 이 책의 저자는 실로 높은 단계의 문장력 으로 독자의 심금을 울릴 것이 틀림없다.

꽃은 보기 힘들어도 겨울 나무들이 사방에 굳건하다. 책을 읽고 나면, 저 겨울나무들이 무심히 건네는 말들이 우리에게도 들려올지 모르겠다...

 

15.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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