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양철학서 범주의 책들은 꾸준히, 적잖게 출간된다. 누군가는 찾고, 누군가는 읽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나도 그 '누군가'의 한 명에 속할 텐데, 맘만 먹으면 매주 페이퍼 거리로 다룰 만한 책도 여럿 된다. 최근에 나온 책 가운데서는 리처드 테일러의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마디, 2014)와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살아야 할 이유>(열린책들, 2014)도 그런 경우다.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는 미국의 원로 철학자로 2003년에 세상을 떠난 저자 리처드 테일러에 대한 관심과 '탁월함'이란 주제에 이끌려 손에 들게 됐는데, 국내엔 오래 전에 소개된 <형이상학>(서광사, 2006; 종로서적, 1990) 외에 <결혼하면 사랑일까>(부키, 2012)가 아주 오랜만에 추가됐고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가 세번째 책이다. '탁월함'을 주제로 삼는다지만 원제는 <자부심 되찾기: 우리 시대의 잃어버린 미덕>이다. '자부심'이 주제인 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미국의 대표적인 형이상학자의 전복적 인생 지침. 행복에 이르는 탁월함을 명쾌하게 밝힌다. 자부심, 선(good)의 원래 의미는 유대-기독교 이래 현대사회에서 사라졌다. 모든 사람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자비가 곧 선이라는 주장 등인데, 이로써 삶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한 사랑’만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그 근거는 탁월함이다. 부와 명예의 과시는 자부심을 주지 못하며 관습과 종교에 맞춰 살며 안주하는 것은 ‘자발적 노예’의 삶이다.

자부심이 결여된 삶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노예의 삶에 불과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연말 '머스트리드' 목록에 올려놓을 만하다(리처드 테일러가 국내에서 그렇게 인지도 있는 철학자는 아니라서 책의 출간 사실이 흥미롭다.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대학도서관이 한 곳도 없다! 그래도 미주나 찾아보기가 다 빠진 건 유감스럽다).

 

 

<의심의 역사>(이마고, 2011)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책도 국내엔 세 권이 소개돼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공존, 2012)에 뒤이어 <살아야 할 이유>까지 나왔기 때문인데, 부제는 '자존의 철학'이고 원제는 <스테이(Stay)>다. '자살의 역사와 그에 반대하는 철학'이라는 원서의 부제가 책의 메시지를 좀더 분명하게 전달해준다. 일종의 '反자살론'이란 점에서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떠올려주는 책(물론 카뮈의 책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자존의 철학. 오래된 동료 시인 두 명의 자살을 목도하며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삶과 죽음을, 특히 자기 살해에 의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살은 인류 역사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는가? 자살을 논하는 철학자들의 시선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가? 현재의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역사학과 철학의 학문적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적, 학문적 역량을 이 책에 집약시킨다.

제니퍼 헥트는 1965년생으로 여러 대학을 거쳐 컬럼비아대학에서 과학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뉴욕의 뉴스쿨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시와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다. 아무튼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본 독자라면 (손해보는 셈치고) 일독해 볼만하다. "<살아야 할 이유>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확실하고 강력한 책이다"(샌프란시스코 북리뷰)도 참고해서...

 

1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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