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짝을 맞춘 듯싶지만, 그냥 러시아 현대희곡 두 편의 제목 그렇다. 예브게니 시바르츠(1896-1958)의 <그림자>(지만지, 2014)와 그리고리 그린(1940-2000)의 <초능력자>(지만지, 2014).

 

 

두 작품 모두 러시아문학(불가코프의 희곡) 전공자인 백승무 박사가 옮겼는데, 현장의 연극평론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평론집 <한국연극, 깊이>(우물이있는집, 2013)를 펴내기도 했다. <그림자>와 <초능력자>는 모두 처음 소개되는 희곡들인데, 그린은 20세기 후반에, 그리고 시바르츠는 20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작가다. 먼저, <초능력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러시아 극작가 그리고리 고린 희곡. 가장 강력한 초능력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멜로드라마이자 허를 찌르는 반전, 유머와 재치 넘치는 대사, 풍자가 있는 코미디다.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 직전 소련 상황에서 탄생한 풍자극이다.

그리고 1940년에 초연된 <그림자>는 안데르센의 동화 <그림자>에서 착안한 동화극이자 풍자극. 스탈린 대숙청기에 사회풍자극이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동화극의 외피가 작가의 목숨을 건지게 한 듯싶다. 그 전말기가 흥미롭다.

 

비정상적인 권력과 타락한 인간성을 고발하고, 정의와 평등을 상실한 암울한 사회상을 폭로하는 <그림자>는 그 적나라한 풍자성 때문에 정치극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다. 당국은 1940년 초연 직후 <그림자>를 곧장 레퍼토리에서 제외한다. 이 작품이 발표된 때는 스탈린 대숙청이 끝난 지 겨우 3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고, 대외적으로 2차 대전이 발발해 정부가 가뜩이나 내부 단속에 몰두하던 때였다. <그림자>가 탄생한 1940년은 8백만 명을 숙청한 1937년 대숙청의 칼부림과 2천 5백만 명이 희생된 2차 대전의 포화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혹독했던 역사의 시련을 고려하면, <그림자>의 탄생은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었고, 시바르츠가 숙청의 칼날을 피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당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누구나 <그림자>의 명백한 정치적 풍자를 읽었지만, 한낱 동화에 불과한 작품을 탄압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화의 유연성과 알레고리의 은닉된 정치성은 허용할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았다. 초연 직후의 상연 철회는 당국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타협책이었다.

아래가 1940년 초연 때의 한 장면이다.

 

 

안데르센의 <그림자>와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14.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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