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대출한 책을 반납하러 다녀와서 주말 오후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먼저, 이번에 방한하여 오늘 연세대에서 특강을 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를 빼놓을 수 없겠다(18일 방한하여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한달여 예판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21세기 자본>(글항아리, 2014)은 표지조차 친숙하지만 나도 실물은 엊그제에야 보게 됐다. 또다른 저작 <불평등경제>(마로니에북스, 2014)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

 

 

피케티의 핵심 메시지는 현재 자본주의가 재능이나 노력보다 태생이 더 중요한 '세습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다는 점('만수르'를 떠올리면 되겠다. 그 '만수르들'이 자본주의의 승자이며 우리를 지배한다. 재벌가의 2세, 3세 경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세습자본주의'는 우리에게도 먼나라 얘기가 아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불편해하고 뭔가 흠집을 잡으려고 애쓰는 걸 보면 제대로 된 경제학자가 비로소 등장한 듯싶다. 방한 회견에서도 한국의 소득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유럽이나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중이라는 진단과 함께 교육투자가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는 처방도 내놓았다. 상식과 심증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경제학자의 발언이라 무게감이 상당하다.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때도 그랬지만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외부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확인하게 된다. 정부이건 주류 언론이건 기본도 안 돼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세월호 사건은 실증이고). 한국종말시계라는 게 있다면 마지막 초읽기도 멀지 않았다. 그래도 어째서 종말인지는 알고서 종말을 맞도록 하자.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에 <21세기 자본>의 책장을 넘겨보도록 하자.

 

 

두번째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문학과지성사, 2010)의 저자 로버트 피어시그. 그 속편 <라일라>(문학과지성사, 2014)가 출간됐다. '장편소설'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면 철학서로 오해함직한 책이다. 심지어 부제도 '도덕에 대한 탐구'다. 작가 자신의 비유로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 그의 첫째 아이라면 <라일라>는 둘째 아이다. 첫째 아이도 분량 때문에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었지만 둘째까지 더 얹어지니까 어떻게든 처치를 해야겠다. 이번 겨울엔 피어시그로 가는 길도 내봐야겠다.

 

 

끝으로 이성복 시인. 놀랍게도 세 권의 책이 한꺼번에 나왔다. 내막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 이성복(李晟馥, 1952- ). 1980년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후 지난해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에 이르기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내놓은 그에게는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수줍게 자리잡았다. 근 사십 년 동안 고통스러운 시 쓰기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이제 지난 시간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시와 산문, 대담 들을 세 권의 책으로 엮어 선보인다. 1970-80년대 미간행 시들을 묶은 <어둠 속의 시>, 마흔 해 가까운 세월의 다양한 사유들을 엮은 <고백의 형식들>, 그리고 서른 해 동안 이루어진 열정적인 대화들을 모은 <끝나지 않는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시집으로는 대학 1학년 때 <남해금산>(문학과지성사, 1986)으로 처음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뒤이어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81)를 읽었더랬고. 시인의 미간행 시들 덕분에 나도 덩달아 30년 전 시간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듯싶다. 정확히는 27년 전이라고 해야 할까. 여전히 어제 일보다 기억에 생생한 장면들이 많아서 편치만은 않은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때로 망각은 우리에게 놀라운 안식을 베풀어주리니...

 

14.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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