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강의를 다녀오느라 주말 포스팅이 늦어졌다. '이주의 저자'부터 고른다. 담주가 마지막 여름 휴가기간 일테니 이번주에 나오거나 다음주에 나올 책 가운데는 편집자들이 마지막으로 밀어낸 책들이 많겠다(그들에게 안식을!).

 

 

먼저,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의 저자 김용규의 신간이 오랜만에 나왔다. <생각의 시대>(살림, 2014). 아, 아주 오랜만은 아니다.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휴머니스트, 2013)이 작년에 나왔었으니까. 그보다 내가 염두에 둔 건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휴머니스트, 2010)이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대작인지라 그 사이에 나온 책들은 소품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제 다시 묵직한 책으로 돌아왔다.

 

 

'생각의 시대'란 언제를 말하는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 사이, 그리스에서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인류 문명을 탄생시킨 ‘생각의 도구들’이 하나둘씩 만들어졌던 것"이란 소개에서 읽을 수 있다. 야스퍼스가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축의 시대'혹은 '차축 시대'(B.C.900-200)라고 명명한 시대와 대략 일치하는 걸로 보인다. 축의 시대는 카렌 암스트롱의 <거대한 전환>이란 책이 <축의 시대>(교양인, 2010)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면서 우리의 입에도 익은 말이 됐다('축의 시대'를 표제로 한 책으로는 KCRP종교간대화위원회에서 엮은 <축의 시대와 종교간 대화>(모시는사람들, 2014)가 더 나와 있다). <생각의 시대>는 김용규 버전의 <축의 시대>인 셈. 저자 특유의 진지한 사유와 날랜 문체가 또 어떤 장관을 만들어냈을지 궁금하다.

 

 

두번째 저자는 강준만. 강준만 교수의 신간이 나왔다는 건 출판계에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거꾸로 몇달 간 책이 안 나온다면 그게 뉴스다. 올여름에만 해도 단독 저서만 세 권을 펴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인물과사상사, 2014)에서 <미국은 드라마다>(인물과사상사, 2014)를 거쳐서 <싸가지 없는 진보>(인물과사상사, 2014)까지.

 

<싸가지 없는 진보>의 부제는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인데, 아직 책소개도 뜨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인물과 사상> 5월호에 실린 글 '왜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에 해가 되는가'를 통해 어림 짐작해볼 수는 있겠다(단행본은 그 글의 주장의 확장한 걸로 보인다). 인터넷에서 원문을 읽어볼 수 있는데, 한 대목은 이렇다.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을 어리석고, 탐욕스럽고, 더 나아가 사악하다고까지 생각하는 한 민주당은 필패(必敗)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고도 놀라운 사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논객들과 언론인들의 대부분이 그런 시각으로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을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가 분노하게끔 조롱하면서도 그걸 풍자나 정당한 비판이라고 주장하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게 바로 싸가지의 문제요 도덕의 문제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주로 참고한 건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의 정치>인데(<도덕, 정치를 말하다>와 같은 책이다) 미국 민주당에 대한 레이코프의 충고를 현 민주당(새정치연합) 진영에 대한 충고로 번안하고 있다.

 

 

한데, 정치적 보수/진보라는 문제틀을 도덕적 보수/진보로 바꿔치기하고 이용해먹은 것은 미국 공화당의 선거전략가들이었다. 가령 동성애에 반대하면 '도덕적 보수'로 분류될 텐데, 이들을 '정치적 보수'로 유인해서 '닥치고 보수'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 과정에 대해선 미국의 가장 가난한 주에 속하는, 그리고 한때 진보적 주에 속했던 캔사스 주가 보수의 중심이 된 배경을 추적해낸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 2012)를 참고할 수 있다(원제가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도덕의 정치'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실제 정치 현실에서 도덕의 정치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도 같이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에게 한국판 조지 레이코프만큼이나 필요한 건 한국판 토마스 프랭크다. 

 

 

세번째는 젊은 동양철학자 임건순. 패기만만하게 '제자백가 아카이브'를 시작하면서 첫 권으로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서해문집, 2014)를 펴냈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시대의창, 2013)에 이어서 두번째 저작. 한데 두번째라는 건 분야를 동양철학에 한정할 때의 말이고, 야구 기자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 저자는 한국의 야구감독들을 다룬 <야구오패>(오블라제, 2012)와 '우리가 몰랐던 류현진 이야기' <생각이 많으면 진다>(브레인스토어, 2013)를 출간하기도 했다. 거의 존재감이 없는 책들인 걸로 보아 본업인 동양철학으로 방향을 튼 것은 현명한 결정으로 보인다(류현진 경기의 시청자들이 류현진 책의 독자와는 무관한 것).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정말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전개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사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공동체가 공유하는 지적 자산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신심이 있었기에 이렇게 또다시 제자백가 사상을 가지고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가진 제자백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 책은 재미있고 쉽습니다. 우선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게, 제자백가 사상과 제자백가 사상사 자체가 원래 재미있습니다.

 

제자백가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제자백가를 두루 다룬 책들이 근래에 몇 권 출간됐다. 신동준의 <고전으로 분석한 춘추전국의 제자백가>(인간사랑, 2014)는 1594쪽의 분량이 말해주듯 '제자백가의 모든 것'으로 담으려고 한 책. 사전으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채한수의 <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김영사, 2013)는 역시나 664쪽의 두툼한 분량이지만 제자백가의 핵심 저작들을 쉽게 풀어주는 책이다. 젊은 중국사 연구자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 시리즈도 제자백가를 건너뛸 수 없는 건 당연한데, 6권 '생각 대 생각 : 제자백가, 2500년을 뛰어넘는 위대한 논쟁'에서 다뤘다. 그러고 보니 첫 두 권이 나오고 소식이 뜸한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도 더 나올 때가 됐다...

 

14.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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