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여정을 뒤로 하고 무탈하게 귀가했다. 역시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며 아이는 오자마자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새로운 것을 보고 만나고 맛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아무리 편한 여행이라도 '집 나가면 고생'이다('편안한 여행'이란 말이 왠지 모순형용처럼 들린다). 일정표를 확인하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지만, 아무튼 돌아와서 다행이다 싶다.

 

 

그런 기분으로 잠시 펴본 책이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의 <저니맨>(위즈덤하우스, 2014)이다. '독일 슈피겔 논픽션 분야 31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광고문구 때문. 판권면에는 독일에서 2003년에 나온 걸로 돼 있는데(알라딘에도 그렇게 표기돼 있다), 2013년의 오식 같다. 2010년 1월부터 2012년 6월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으니 2003년에 책이 나왔을 리가 없다. 독일 아마존에 뜨는 걸로는 작년 11월에 나온 책이다. 그리고 화제작.  

 

 

저자는 1981년생. 28살에 단돈 200유로(약 30만원)만 손에 쥐고 세계여행을 떠났고, '저니맨 이야기'란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렸다. 2년 2개월의 여정과 그 기록이 단행본으로 나온 셈. "이 책은 스물여덟의 청년 파비안이 단돈 30만 원을 들고 떠난 수련여행의 기록이다. 그는 2년 2개월 동안 10개국을 여행했으며, 먹을 것과 잠자리만 제공받는 조건으로 현지에서 일을 구해 비용을 충당했다. 이 기간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끼니를 거른 적도 있으나 세계적인 유명인과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무엇 하나 계획한 것 없이 떠났지만, 수련여행이 끝났을 때 그는 자기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런 게 여행이지 싶으면서도, 나 자신은 중년이란 사실이 문득 다행으로 여겨진다. 똑같은 이십 대였다면 덩달아 가방을 꾸리고픈 욕구에 시달렸을 수도 있기에(알다시피 나이는 이런저런 유혹을 평정하게 해준다).

 

번역본의 부제는 '생에 한 번, 반드시 떠나야 할 여행이 있다'. 덕분에 생각난 건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다. 프라하를 다녀온다고 체코문학 전공자인 김규진 교수의 <일생에 한번은 프라하를 만나라>(21세기북스, 2013)를 구입했건만, 어디에 둔지도 모른 채 떠났다. 이제 보니 박성숙의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21세기북스, 2012)도 베를린 여행에 요긴한 참고가 될 뻔했다. 뒷북으로라도 찾아 읽어볼까 한다.

 

아무려나 '일생의 한번은' 해볼 만한 일을 두 건이나 해치우고 온 셈이어서 얼마간 만족스럽긴 하다. 혹 기회가 돼 프라하나 베를린에 한번 더 가게 되면, 인생 두 번 사는 게 될는지도...

 

18. 08. 19.

 

 

 

P.S. 한편, 베를린에서는 한창 유럽 여행 중인 정여울 선생 일행과 만나 저녁을 같이 먹으며 여행에 대한 훈수도 들었다(문학평론을 부업으로 하는 전업 여행가가 아닌가 싶었다!). 남은 여정을 순조롭게 마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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