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46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안 다이어리>(이후, 2014)를 다루었다. 2006년 암살당한 러시아의 인권운동가이자 여성 기자 안나의 마지막 일기인데, 2004년은 나도 러시아에 있던 때라서 많은 시사적 사건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암담한 러시아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겹쳐지기도 해서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시사IN(14. 05. 03) 우리는 러시아와 얼마나 다를까

 

안나 폴릿콥스카야를 아시는가. 푸틴 정권의 반테러 정책과 민주주의 파괴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하고 고발해온 여성 기자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런 비판을 허용할 만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2005년 당시 러시아는 세계에서 언론활동을 하기에 가장 위험한 다섯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폴릿콥스카야는 2006년 10월 자신의 아파트 계단에서 괴한의 총격에 의해 살해되었다.


‘러시아의 양심’이 암살당한 이후로 불행하게도 러시아 국민은 이제 또 다른 안나 폴릿콥스카야를 갖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그녀의 기록과 증언이 러시아인들에게만 의미를 지니는 건 아니다. 권력자와 권력집단의 탐욕과 비양심이 어떤 국가적 재난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폴릿콥스카야의 경고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체첸전쟁의 비리와 참상을 폭로한 <더러운 전쟁>에 이어서 출간된 <러시안 다이어리>가 갖는 의의다.

 


<러시안 다이어리>는 그녀가 남긴 최후의 기록이다. 2003년 12월부터 2005년 8월까지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을 기술했다. 2003년 12월에는 두마(러시아의 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고 2004년 3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푸틴이 재선에 성공해 집권 2기로 접어들게 되는 해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옐친이 러시아연방을 통치하던 시기에 이슬람 주도로 체첸 지역의 분리‧독립 요구가 거세게 일어나자 러시아가 이를 강제로 진압하면서 발생한 것이 제1차 체첸전쟁(1994-1996)이다. 그리고 폴릿콥스카야는 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주역 가운데 한 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KGB 국장 출신으로, 옐친에 의해 전격 후계자로 발탁된 푸틴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크렘린에 입성하기 위해 또 한 번 전쟁을 일으킨다. 제2차 체첸전쟁(1999-2000)이다. 러시아군은 전쟁 중에 위법적 살인과 납치, 강간, 고문 등을 일삼았고 폴릿콥스카야는 그 실상을 대담하고도 용기 있게 폭로했다.


그렇더라도 현실적으로 한 기자의 힘이 최고 권력자를 꺾을 수는 없었다. 푸틴은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또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고 더욱 강력한 권력체제를 갖춘다. 그는 의회를 무력화하고 입법부와 행정부를 실질적으로는 통합함으로써 과거 소련 체제를 부활시켰다(‘푸틴의 제국’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문제는 이에 대한 국민의 동의다.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와 도전, 곧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아무도 항의하거나 궐기하지 않았다. 폴릿콥스카야가 보기에 그 결과는 소련 시절로의 회귀다. “다만, 이제는 관료적 자본주의를 가미해서 국가 관료가 어떤 사유재산가나 자본가보다 더 부유한 거물급 올리가르히(산업, 금융재벌)로 존재하는, 약간은 손보고 가꾼, 세련된 소련으로.”  


일례를 들어보자. 2004년 9월 러시아 남부 베슬란 시의 한 초등학교에 체첸 반군이 잠입해 학생 1000여 명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살해당하는 참사로 끝났는데, 그녀가 문제 삼는 것은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였다. 기자로서의 양심과 신념을 저버린 텔레비전 진행자와 방송기자들이 내보낸 보도의 대략 70%가 거짓이었고, 국영방송의 경우는 90%가 거짓이었다. 1,200명에 이르는 여자와 어린이들이 인질로 잡혀 있었지만 언론은 354명이라고 보도함으로써 테러범들을 자극했다. 언론의 기만적인 자기 검열이 작동한 최악의 사례였다.


폴릿콥스카야의 폭로와 염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국민의 경고에 귀를 닫고 있고, 당국자들은 자기 몫 챙기기에만 바쁘다. 뭔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지. 우리는 러시아와 얼마나 다른 사회에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14.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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