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서 펴내는 월간 책&(426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로쟈의 주제별 도서 소개' 꼭지가 '인문학 서재'로 바뀌었고, 이달의 주제로는 '한국문화 바라보기'를 골랐다. 세 권의 관련서를 간단히 소개한다(덧붙이자면, 한국식 재난대응 문화를 다룬 책도 나옴직하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인 것도 '문화'라면 말이다).

 

 

 

책&(14년 4월호) 한국인이 한국문화를 모른다?

 

한국인이 한국문화를 모른다? 물론 그렇게 등잔 밑이 어두운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친숙하기에 그냥 지나치거나 막연히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주의를 소홀하게 만든다. 거기에다 습관적인 망각도 우리의 무지에 일조한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인물과사상사, 2014)를 계기로 우리가 놓치거나 간과한 우리문화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일러주는 몇 권의 책을 책장에서 빼내보았다. 


먼저,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는 ‘화장실의 역사’부터 ‘립스틱의 역사’까지 아홉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주제들이지만 우리 근‧현대 문화사 속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일례로 화장실을 보자. 전통적인 뒷간 혹은 변소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건 1920년대였다고 한다. 일제가 조선의 화장실을 개혁 대상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위생을 명목으로 재래식 화장실을 개량하고 요강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단기간에 개량될 일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에도 서울역 공용변소의 분뇨와 악취 문제가 단골기사로 등장할 만큼 화장실 문제는 오랜 골칫거리였다. 그러다 1950년대 말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화장실문화도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수세식 화장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수세식 화장실은 아직 일반 대중이 넘겨다보기 어려운 호사였고 공중화장실 문화는 여전히 낙후돼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1980년대에 ‘화장실 혁명’이 일어난다. 정부의 지원과 압력 하에 전국의 재래식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개량된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인데, 한국의 도시화와 공업화 과정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진전이 도시 가정 내의 화장실 보급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급속한 변화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한국 문화 교육 전문인’을 자처하는 정수현‧정경조의 <손맛으로 보는 한국인의 문화>(삼인, 2014)는 한국인의 의식주에 관련한 다양한 소재를 한국과 동서양 여러 나라의 문화와 비교하는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다. “한국인의 생활상을 흥미롭게 전달해주는 이야기이자, 한국과 한국인이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익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는데, 특히 한국 식생활에 대한 비교서술은 이러한 길잡이로서 맞춤하다. 가령 ‘김치 vs. 샐러드’나 국 vs. 수프’ 같은 대비는 우리 식생활 문화의 특징을 단번에 압축한다.


가령 국물을 영어로는 주로 ‘수프(soup)’라고 옮기지만 우리가 아는 대로 국과 수프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음식이다. 국(혹은 탕)은 그 자체가 주 메뉴이지만 수프는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제공되는 부수적 음식이다. 조선시대 이후 문헌에 나오는 음식 종류에 구이류가 123가지인데 비해 국류는 204가지나 될 정도로 한국 음식엔 국이 많다. 왜 이렇게 국을 많이 먹을까.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주식인 밥이 빡빡하지 않게 잘 넘어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고, 둘째는 가난한 하층민이 국으로 배를 채움으로써 적은 밥으로도 포만감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며, 셋째는 온돌이 발달한 나라에서 온돌에서 남는 열을 이용하다 보니 국물 음식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은 문화적으로 단순한 먹을거리 이상의 의미도 함축한다. 국은 밥, 반찬과 함께 먹는 음식이기에 ‘관계론적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에 식전 에피타이저와 메인 요리, 식후 디저트를 각각 따로 먹는 서양음식은 ‘개체론적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물 음식의 특징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나눠먹는다는 데 있고, 이것은 집단의 동질성을 좀더 중요시하는 문화에 상응한다. 우리 식탁에서 국물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되는 이유다.


한국 근대 문학‧문화 연구자인 권창규의 <상품의 시대>(민음사, 2014)는 출세, 교양, 건강, 섹스, 애국 등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한국 소비사회의 기원을 들여다본 책이다. 처음으로 상품이 유입돼 소비문화가 형성되던 일제 식민지 시기를 그 기원으로 본다. 저자는 주로 신문이나 잡지 기사와 광고 전단지를 자료로 활용하면서 한국인이 소비자와 교양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일례로, 처음 만난 이성 남녀가 서로의 취미를 물어보는 것도 한국식 문화라면 그 기원은 192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1920년대 중반부터야 취미나 취향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스포츠는 ‘취미 위생’에 속했고, 영화나 연극에 대한 취미는 ‘연예 취미’로 불렸으며, 문학에 대한 관심은 ‘문예 취미’로 일컬어졌다.


문화인 혹은 교양인이란 ‘취미가 있는 사람’과 동의어였기에 취미에 대한 질문은 수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취미는 독서입니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교양 있는 가정이라면 음악 감상을 권유받았기에 1930년대에 보급된 유성기나 1960년대 초의 전축은 중산층 가정의 지표였다. 1930년대 한 일본축음기의 광고 문구에는 축음기가 ‘가정 단란’과 ‘웃음꽃이 핀 가정’을 선물한다고 했다. 상품은 바뀌고 문구는 조금 달라졌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소비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만들어져왔다.

 

14.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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