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38호)에 실은 리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올리버 스톤과 타리크 알리의 대담 <역사는 현재다>(오월의봄, 2014)를 읽고 적었다. 덕분에 타리크 알리의 책들에 다시 관심을 갖게 돼 몇 권 더 주문했다(<1960년대 자서전>은 다시 구했다). 대담의 계기가 된 책 <캐리비안의 해적>도 번역되면 좋겠다...

 

 

시사IN(14. 03. 08) 올리버 스톤 감독 역사를 묻다

 

파키스탄 출신의 망명자이자 정치운동가 타리크 알리가 미국의 대표적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만나 역사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역사는 현재다>(오월의봄)의 제목과 저자가 일차적으로 말해주는 바였다. <뉴레프트 리뷰>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타리크 알리의 책은 몇 권 소개된 적이 있기에 관심은 <플래툰>과 <7월 4일생>, <제이에프케이> 등의 감독 올리버 스톤에게 더 쏠렸다. 미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영화를 많이 찍어온 만큼 그가 역사에 대해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

 

 


사정을 알고 보니 대담이라기보다는 스톤이 주로 질문하고 알리가 답한 인터뷰에 가까웠다. 12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역사>를 준비하던 올리버 스톤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를 다룬 알리의 책 <캐리비안의 해적>을 읽고서 직접 전화를 넣은 것이 시발점이었다. 올리버 스톤의 문제의식은 미국인들이 세계사는 차치하고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충격적일 만큼 무지하다는 데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은 규격화된 역사 교육을 통해 포장된 형편없는 내용만 배웠어요. 아니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거나.”


그런 문제의식에 호응해 타리크 알리는 미국 현대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러시아혁명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역사에 대한 성찰과 재평가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나 차르체제가 무너졌을 때 미국은 그간의 고립주의를 포기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한다. 이 참전을 계기로 북미 국가였던 미국은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그해 10월 레닌과 볼셰비키가 주도한 혁명을 통해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된다. 20세기 세계사의 대립구도가 이때 형성된다. 

 


러시아혁명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 도처의 탄압받는 비참한 자들을 존중받게끔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러시아혁명이 가져온 희망이었다. 이 희망은 거꾸로 서구 열강과 자본가 계급의 공포를 부추겼다. 러시아혁명으로 인해 독일 노동자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자,혁명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세력들은 파시즘을 발흥을 적극적으로 용인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볼셰비키주의에 맞서는 수호자로 간주해서다. 무솔리니를 지지했던 윈스턴 처질은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볼셰비키 세력을 막기 위해서라면 베니토 무솔리니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볼셰비키 혁명의 충격과 확산을 차단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담합은 내전이 벌어진 러시아에 반혁명군(백군)을 지원하기 위한 파병으로까지 이어진다. 러시아 내전은 혁명군(적군)의 승리로 돌아가지만, 4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손실은 막대했다. 10월 혁명을 주도했던 페테르부르크 노동자의 30-40퍼센트가 사망했다. 그들의 빈자리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전통과 무관한 시골의 소작농들로 채워졌고 이들을 토대로 스탈린 체제, 소비에트 관료주의 국가체제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러시아혁명의 좌초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볼셰비즘에 대한 방어책으로 유럽이 파시즘을 방조한 대가가 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대영제국의 바통을 이어받아 제국주의 강국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 놓인 건 노동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었다. ‘볼셰비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종교계까지 나섰고, 정부도 종교를 공산주의에 맞설 무기로 여기면서 미국은 매우 ‘종교적인 나라’가 됐다. 그리고 이후에는 세계 각지에서 자신의 이익과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가령 인도네시아의 공산당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민족주의 지도자 수카르노를 몰아내고 잔인한 독재자 수하르토를 앉혔고, 그 과정에서 100만 명이 학살됐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면, 역사는 다시금 반복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14.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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