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독서인'의 독서에세이 코너 '독서카페'를 1년간 맡게 됐다. 이달에는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 2014)를 읽은 소감을 적었다. 드라마 <정도전>이 방영되고 있지만(시청한 일은 없어서 조재현이 정도전 역을 맡았다는 것만 안다), 이덕일의 이 '역사특강' 자체가 드라마의 제작진과 출연진을 위한 특강이었다.

 

 

 

독서인(14년 2월호) 정도전과 그의 시대

 

역사란 무엇인가.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에서 역사저술가 이덕일은 ‘반성의 도구’라고 말한다. 새로운 말은 아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잘 살피기 위함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판이하게 다르다면 과거를 거울로 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란 반문도 가능하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새로운 문제를 사고하거나 해결하는 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역사는 언제, 어떻게 소용이 되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새롭고도 새롭지 않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시간이고 새로운 날들이지만, 또 한편으론 어제와 같은 일상의 반복이기도 하다. 반복은 교훈을 낳는다. 앞서 간 수레바퀴 자국을 가리키는 전철(前轍)은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된다. 잘못된 길을 가다 엎어진 수레의 흔적은 우리에게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게 반복적인 경험과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현명함이다. 반대로 똑같이 잘못된 길을 가다가 또다시 엎어짐으로써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이런 현명함과 어리석음도 역사 속에서 반복돼 왔던가.


이솝 우화에 전하는 얘기가 떠오른다. 전갈과 개구리 얘기다. 어느 날 전갈이 개구리에게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개구리는 전갈이 독침으로 자기를 찌를까봐 두려워하는데, 전갈은 만약 내가 널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킨다. 설마 자살과 같은 행위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믿고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운다. 하지만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찌르고 결국 둘 다 죽게 된다. 죽어가던 개구리가 왜 찔렀느냐고 묻자 전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갈이야. 그게 내 본성이라고.”


이 우화의 교훈은 무엇인가. ‘타고난 본성은 어쩔 수 없다’ 정도로 정리될 수 있겠지만, 전갈의 ‘인지 부조화’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명 전갈의 이성은 개구리를 찌르는 행위가 자신의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문제는 그의 이성이 본성을 통제할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개구리뿐만 아니라 전갈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했으므로 이 부조화는 극복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성의 힘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본성의 힘을 직시했다면 애초에 전갈은 개구리에게 강을 건너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선 기대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성의 힘을 더 키우는 것이다. 가령 본성을 제어하기 어렵다면 필요한 경우 독침에 보호대라도 씌워서 파국을 막는 것도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전갈과 개구리의 우화를 우리의 역사인식과 성찰에도 적용해봄직하다. 과거에 대한 인식과 성찰로서의 역사의식은 과연 우리의 타성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그와는 반대로 역사의식조차도 결국 반복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아야 할까. <정도전과 그의 시대>를 읽으며 줄곧 머릿속으로 헤아려보았다. 저자가 보기에 ‘왕도정치를 꿈꾼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과 그가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그렇다. 외적으로 고려말은 대륙의 주인이 원에서 명으로 교체되던 시기였고, 내적으로 고려사회는 극심한 빈부격차, 즉 사회적 양극화로 백성의 삶이 파탄에 이르고 있었다. 소수의 권문세족이 나라의 모든 재화를 독차지하고 있었기에 토지개혁 상소문에서 조준은 “불쌍한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개천과 구덩이에 빠져 죽는다”고 적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려왕들의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선왕과 충숙왕이 시도한 개혁정치가 실패하자 사정은 더 악화된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 공민왕이 등장해 망해가는 고려를 되살리기 위한 최후의 시도를 모색한다. 그는 ‘농토문제와 백성들의 억울함을 분별해 잘못을 바로잡는 기관’이라는 뜻의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지만, 개혁대상인 친원파의 반발로 실패한다. 이후 공민왕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신돈을 앞세우게 되는데, 신돈은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도록 하는 혁신적인 개혁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며 민심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민심이 오히려 신돈의 앞을 가로막는다. 신돈은 권문세족과 신흥사대부,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고, 그가 백성들로부터 ‘성인’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자 기분이 틀어진 공민왕은 신돈을 내친다. 저자는 공민왕이 신돈을 제거한 것이 가장 큰 과오이며, 이로써 고려는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고 평한다. 신돈의 실패는 고려왕들이 중심이 돼 시도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끝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개혁이 실패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혁명이다. 신흥사대부는 고려 왕실의 처리와 토지개혁 방법론을 두고 온건개혁파와 역성혁명파로 나뉘게 되는데, 온건개혁파의 거두가 이색이었다면 정도전과 조준이 역성혁명파의 대표적 인물들이었다.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건국 과정은 혁명적인 개혁사상을 품고 있던 정도전이 변방의 무장 이성계를 찾아가 의기투합함으로써 첫발을 내딛게 된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결합, 그것을 저자는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던 고려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진 지식인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무장의 만남”으로 규정한다. 정도전의 혁명사상이 이성계의 군사력과 만나게 된 셈인데, 이때가 1383년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뒤 고려는 패망하고 조선이 들어선다.


고려말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극심한 양극화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있어서 빚어진다. 고려말의 권문세족은 정치권력을 독점하면서 이를 등에 업고 사익 추구에 몰입하여 경제권력 또한 장악한다. 소수의 권문세족이 정치, 경제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이에 따라 자영농의 대부분이 몰락해간 것이 고려사회를 붕괴로 내몬 당시 상황이었다. 저자는 “한 사회가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정도전의 일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메시지라고 말한다. 이것이 전철이다. 우리는 우리가 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된 길에서 제때 돌릴 수 있을까.

 

14. 02. 13.

 

 

P.S. 정도전 관련서가 여럿 나오고 있는데, 조유식 알라딘 대표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휴머니스트, 2014; 푸른역사, 1997)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고, 김탁환 작가도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전2권, 민음사, 2014)을 선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조선 건국 내지 개창 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 구해서 본 건 김당택 교수의 <조선왕조 개창>(전남대출판부, 2012)이다. 학계의 주류적 시각과는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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