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드문 일인데, 이주의 주목할 만한 책은 철학서들이다. 철학서만으로 '이주의 책'을 다 골라도 될 정도다. 몇 권을 따로 언급해둔다.

 

 

 

먼저, 토머스 네이글의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궁리, 2014). '토머스 네이글의 아주 짧은 철학 입문 강의'가 부제다.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이 모든 것의 철학적 의미는?>(서광사, 1989)이라고 오래 전에 얇은 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토마스 나겔'이란 저자명으로 나온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동문선, 1998)도 같은 책을 옮긴 것이다. 원서는 112쪽 분량. 서광사판은 98쪽이고, 동문선판은 124쪽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건 264쪽이다. 어떤 마술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다. 뭔가 추가된 것일까?(*마술이 아니라 해프닝이었다. 164쪽이 264쪽으로 오기됐던 것.)  

 

 

 

아무튼 1987년에 나온 책이 아직 절판되지 않은 걸 보면 영어권에서는 철학 입문서로서 여전히 쓰임새를 갖는 모양이다. 서광사판과 동문선판을 다 갖고 있(었)지만 완독하지는 않아서 내게는 그렇게 유용한 책은 아니었다. 다시 읽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분량 때문에 네이글의 책이 떠올려주는 건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이다. 이 역시 몇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 학부시절에 서광사본을 참고해서 원서로 읽은 기억이 난다(이른 아침에 친구와 교정 벤치에 앉아 강독을 했었다). 철학 입문서를 찾다가 분량 때문에, 그리고 저자가 러셀이라서 골랐을 것이다. 네이글의 책도 비슷한 용도를 갖겠다는 것. 다만 영미철학적 시각의 입문서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마침 이번 주에는 <처음 읽는 영미 현대철학>(동녘, 2014)도 출간됐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동녘, 2013),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동녘, 2013)과 함께 '처음 읽는 현대철학'의 '3종 세트'가 되는 것인가. 마치 속전속결인 듯 연이어 나왔는데, 편집자들이 땀깨나 흘렸을 성싶다. 나란히 꽂아둘 만하다.

 

 

 

그리고 독일 철학자(하지만 현재는 미국의 노터데임 대학교의 철학과 교수로 있는) 비토리오 회슬레의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도서출판b, 2014)도 눈길을 끄는 철학서다. 예전에 EBS에서 방영됐던 듯한데, 게오르크 가다머와 함께 철학과 철학사의 주제들에 대해 대담을 주고받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가다머가 격찬한 만큼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국내 소개된 책들로만 판단할 건 아니라고 해도. 국내에선 주저인 <헤겔의 체계1>(한길사, 2007)도 달랑 1권만 나오고 소식이 끊긴 지 오래 됐다. 아무튼 타이틀로만 보자면 <헤겔의 체계>보다는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이 그나마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일 듯하다.  

 

 

 

'현대의 위기'라고 하니까 영어권의 걸출한 헤겔 학자인 찰스 테일러의 <헤겔 철학과 현대의 위기>(서광사, 1988)도 떠오른다. <불안한 현대사회>(이학사, 2001)나 방한 강연문집인 <세속화와 현대 문명>(철학과현실사, 2003) 등이 국내에 소개된 책들이다(덧붙이자면 테일러는 마이클 샌델의 논문 지도교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테일러의 책은 <헤겔>은 모르겠지만, <자아의 원천들>이나 <세속시대> 등은 소개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적어도 <자아의 원천들>은 빨리 읽을 수 있었으면 싶다...

 

14.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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