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흐린 날씨 탓인지 착 가라앉은 느낌의 연휴 후반이다. 건너뛸까 하다가, 그래도 찾아보면 관심 저자들이 없지 않아서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인류학자와 역사학자들이다.

 

 

 

먼저 <문화의 해석>(까치, 2009/1998)과 인도네시아 현지조사로 유명한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 <저자로서의 인류학자>(문학동네, 2014)가 '인문 라이브러리' 총서의 하나로 나왔다.

20세기 후반 해석인류학과 상징인류학을 이끌었던 클리퍼드 기어츠의 후기 대표작 <저자로서의 인류학자>가 국내 초역되었다. 기존의 인류학이 문화를 과학적으로 조사해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방안에 몰두해왔다면, 이 책은 세계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달라지고 있고 달라져야 하는 인류학의 성격을 메타적으로 성찰한다. 인류학이 단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는 과학이 아니라 다층적 해석을 유도하는 문학적 글쓰기라는 주장은 당시 과학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학계에 경종을 울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기어츠는 이 책으로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분석력, 보기 드문 문장력을 인정받으며 1989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기어츠가 인류학자 저자로 지목한 네 사람은 레비스트로스, 에번스프리처드, 말리노프스키, 베네딕트 등이다. 과학자이고자 했지만 현지조사 후 민족지를 작성하면서 그들이 실제로 수행한 작업은 문학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기어츠는 기존의 정언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대신, 질문이 전제하는 중심축을 이동시킨다. ‘그곳에 있기’라는 인류학자의 체험과 ‘이곳에 돌아와 쓰기’라는 인류학자의 과제를 투명하게 잇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인류학적 담론의 성격이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 인류학은 그러한 과학적인 담보를 통해서만 신빙성을 얻을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 기어츠는 부정적으로 응답하는바, 인류학자들의 조사 경험을 내보이는 글쓰기가 애초부터 문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역설한다. 이 논지는 그에게 해석인류학의 일인자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던 <문화의 해석>에서 제기했던 문제, ‘문화는 텍스트이며 인류학자는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 자’라는 주장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극으로 밀고 나간 것이다.

역사학에서 헤이든 화이트, 철학에서 리처드 로티가 제기했던 문제의식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고 할까. 혹은 '과학'과 '해석학' 사이의 오랜 대결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건 따로 다뤄볼 만한 주제다.

 

 

 

두번째는 프랑스의 중세사학자 미셸 파스투로. 사실 이름은 나도 이번에 기억하게 됐는데, 그의 <곰, 몰락한 왕의 역사>(오롯, 2014)가 출간됐다. '동물 위계로 본 서양 문화사'가 부제. 찾아보니 공저들 외에도 <우리 기억 속의 색>(안그라픽스, 2011),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이마고, 2002) 같은 낯익은 책들의 저자다(<색의 비밀>과 <블루, 색의 역사>는 절판됐다). 색의 문화사학자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엔 동물의 역사다. 경력은 이렇다고.

미셸 파스투로의 초기연구들은 문장ㆍ인장ㆍ이미지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의 연구는 문장학을 학술적 연구의 주제로 승화시켰으며 그것을 온전한 역사과학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0년대 이후에는 색의 역사를 주제로 다양한 문제들을 연구하고 가르쳐 이 분야 최초의 국제적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최근에는 중세 동물의 역사, 동물지, 동물학이라는 주제가 그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화상으로 곰은 우리와도 친숙한 동물이니 곰의 문화사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서양문화사의 곰 이미지를 단군신화 이후 우리 문화사에서의 곰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그런 책이 나와 있나?). 곰을 '몰락한 왕'으로 내몬 문화사적 전쟁은 어떤 것이었나.

모든 문화는 동물의 왕을 선택해 상징체계의 중심에 놓는다. 고대 유럽에서 지중해 문화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동물의 왕은 곰이었다. 그러나 중세 교회는 야성의 상징이자 이교 제의의 주인공인 곰을 동물의 왕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했다. 교회는 곰과 거의 천 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 곰을 상대로 한 교회의 오랜 싸움은 12∼13세기에 이르러 결실을 맺었다. 이제 곰은 더 이상 숲의 주인이자 전사들의 신, 왕가의 조상,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곰은 동물의 왕 자리에서 폐위되었고 유럽의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유럽의 이교 문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숭배 받던 곰은 어떻게 동물의 왕 자리를 사자에게 빼앗기게 되었을까. 저자 미셸 파스투로는 박식함과 전문성을 가지고 이 주제를 탐구한다. 곰이라는 동물을 소재로 기독교화의 영향으로 중세 유럽에서 서기 1천년을 전후로 나타난 문화와 인식 체계의 변화를 다룬다.

요약하면, '곰에서 사자로'다. 교회가 왜 그토록 곰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했는지는 책을 펴봐야 알겠다.

 

 

 

일본사 전공자가 아니라면 마리우스 B. 잰슨이란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울 텐데, 마지막 저작이자 필생의 역작 <현대 일본을 찾아서 1,2>(이산, 2006)을 남긴 미국 일본사 연구의 권위자다.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푸른길, 2014)은 초기 대표작(1971년작이다).

 

에도 막부의 말기적 상황, 서구 열강들의 개항 요구, 권력다툼과 계급 간 갈등, 정치.사회 개혁 등 유신 전후의 시대 상황을 보여 주면서 메이지 유신의 발생과 과정, 결과를 폭넓게 풀어 나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카모토 료마와, 일부지만 료마의 친구이자 메이지 유신의 중요한 조력자인 나카오카 신타로 및 유신 주역들의 업적과 사상을 살펴보면서, 메이지 유신이 가져온 변화 자체보다는 그 의미와 원동력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유신의 전개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일본 근대사에 대한 묵직한 저작이 출간된 걸로 보면 되겠다...

 

14.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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