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중앙일보의 북섹션에서 '올해 당신을 움직인 책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답한 짧은 책소개를 옮겨놓는다. 올해의 책을 여럿 추천한 바 있는데, 그 가운데 권헌익, 정병호의 <극장국가 북한>(창비, 2013)에 대한 소개를 청탁받아 적었다. 올해 나온 북한 관련서로서는 가장 중요한 책이고, 또 사회과학 분야를 통틀어서도 가장 인상 깊은 책 가운데 하나다.

 

 

 

중앙일보(13. 12. 28) 2013년 나를 움직인 책

 

“도대체 북한은 어떻게 돼먹은 나라야?” 이런 질문이 개탄이 아니라 진지한 관심의 표명이라면 <극장국가 북한>은 가장 먼저 읽을 만한 책이다.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치부되곤 하는 북한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그것도 상당히 정교한 이론적 틀을 적용해 북한을 명쾌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인류학자인 두 저자는 “북한 정치체제에는 미스터리가 없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다”고 단언한다.

어째서 삼대세습을 밀어붙였으며, 심각한 경제난에도 체제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그 비밀을 풀어주니 ‘북한이라는 국가의 이념과 창건신화, 그리고 현실에 관한 최고의 연구’라는 브루스 커밍스의 찬사가 과장이 아니다.

 

두 저자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권력이란 개념을, 그리고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에게서 극장국가란 개념을 빌려온다. 베버에 따르면 카리스마 권력은 전통적·합리적 권력이 실패할 때 대두한다. 카리스마적 인물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내지만 문제는 권력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 권력이 지속될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북한은 ‘혁명예술’이라 불리는 다양한 선전양식을 고안했다. 카리스마 권력과 극장국가의 결합! 하지만 카리스마 귄력에 대한 숭배는 정치와 행정의 과도한 중앙집중과 민주 원리의 파괴를 가져왔고 시민사회의 경제적·도덕적 토대를 무너뜨렸다. 카리스마 권력이 주도하는 극장국가의 한계다.

북한은 이 한계를 인식하고 극장국가를 끝장내는 투쟁에 나설 수 있을까.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도 달린 일이라면 우리의 긴박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대비를 위해서라도 필독할 만하다.

 

13. 12. 28.

 

 

 

P.S. 좋은 책의 미덕은 다른 책에 대한 관심도 부추긴다는 점이다. 베버와 기어츠의 책뿐 아니라 저자들은 북한 관련서의 전반적인 현황에 대해서도 알게 해주는데, 그중 찰스 암스트롱의 <북한 혁명 1945-1950>(2003), 타치아나 가브루센코의 <문화전선의 전사들>(2010), 김숙영의 <환영의 유토피아>(2010) 등이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중요한 연구 성과로 꼽힌다(물론 이런 책들은 국내에 소개돼 있지 않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남한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싶다).

 

 

 

브루스 커밍스의 <북한>(2004)은 <김정일 코드>(따듯한손, 2005)로 번역됐었지만 이마저도 절판된 지 오래다. 국내 학자들의 북한학 연구 수준이 궁금해서 내친 김에 어제는 <현대 북한학 강의>(사회평론, 2013)도 주문했다.

 

 

<극장국가 북한>의 배경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북한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 책들인데, (곧 개정판이 나온다고 하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04)와 <북한의 역사1,2>(역사비평사, 2004)가 있다. 새해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이해 수준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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