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 소식지인 '르 지라시'(제6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나의 장르문학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것인데, '선수들의 장르문학사'란 기획꼭지의 제목과는 맞지 않게 장르문학에 관한 한 나는 '후보선수'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할 형편이다(같은 지면에 실린 김용언, 김봉석 같은 선수들의 글은 참고할 만하다. 그들은 '진짜' 선수다). 그런 사정을 적었다.

 

 

 

르 지라시(13. 11. 30) 이현우의 장르문학사

 

한때 장르문학을 탐독한 경험이 없는 독서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한때’였다는 것. 지속적인 독서는 아니었기에 ‘추리, SF, 무협, 판타지, 공포, 로맨스’ 가운데 몇 권을 골라서 연대기순으로 써달라는 주문에 응하기가 쉽지 않다. 장르문학의 모양새를 갖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이나 <죄와 벌>도 그 목록에 넣을 수 있다면 이야깃거리가 늘어날지 모르겠다. 그게 아닌 이상, 내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을 주로 맴돌 따름이다.


내게도 압도적인 경험은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팽’이었다. 지금은 모두 번듯한 전집들이 출간돼 있지만 1970년대 후반엔 그냥 계림문고 등의 시리즈 도서가 나와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집에도 책이 몇 권 있었지만, 주로 학급문고나 학교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었다(지금 기억으로는 대단히 빈약한 도서관이었지만). 당시에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가 코난 도일이란 건 알았지만 괴도 루팽 시리즈의 저자가 모리스 르블랑이란 건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어쩌면 모두가 코난 도일의 작품인 걸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저자가 누구인가는 관심사가 아니었고, 홈즈와 루팽이 언제 대결하게 될까가 흥밋거리였다. 찾아보니 르블랑이 <뤼팽 대 홈즈>란 작품도 쓴 게 눈에 띄는데, 내가 그 시절에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뤼팽 대 홈즈’는 ‘알리 대 포먼’의 헤비급 타이틀매치보다 더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최근에 <셜록 홈즈 베스트 컬렉션> 같은 작품집이 나와서 구해보니 지금껏 인상이 남아있는 작품은 <빨간 머리 클럽>이나 <춤추는 인형의 비밀> 같은 단편들이다. 다시금 전집을 구하고픈 욕심도 나지만, 책값보다는 꽂아놓을 공간 문제로 구입은 미루고 있다. 게다가 요즘 나와 있는 전집만 해도 여러 종이어서 선뜻 구입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다시 읽어도 그때만큼 흥미로울까.

 

홈즈가 사소한 단서를 근거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솜씨도 흥미진진했지만, 나는 암호문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듯싶다. 가령 ‘춤추는 인형’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인형 문자를 영어 단어에 가장 많이 쓰이는 알파벳 ‘e’로 추리하는 것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루팽 이야기의 압권은 <기암성>이었는데, 제목이 풍기는 인상부터가 ‘괴도’ 루팽과 썩 어울렸다. 판본은 잊었지만 학급문고로 읽은 기억이 난다. 표지에 기암성의 그림과 함께 루팽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던가.


비슷한 시기에 SF와 첩보물도 읽었다. 모두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급문고로 읽은 것이다. 당시 나는 반장이면서 학급문고 관리부장도 겸하고 있었다. 캐비닛 하나가 학급문고 서가였는데, 대출을 관리하고 파본도서를 수선하는 게 관리부장의 일이었다. 집에도 책이 적은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주로 방문 판매원에게서 구입한 전집 위주의 책들이 꽂혀 있었고 장르문학은 드물었다. 하지만 급우들이 학급문고로 내놓은 책 가운데는 집에선 못 읽던 책들이 많았다. 제목은 잊었지만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나오는 SF물과 나폴레옹 솔로가 활약하는 첩보물이 기억에 남는다. 나폴레옹 솔로가 나오는 소설은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의 하나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고 싶긴 하다. 어릴 때 동화책들에서 읽은 ‘공주들’ 말고, 여자 주인공의 존재감을 처음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나폴레옹을 솔로를 도와주거나 유혹하는 ‘팜므 파탈’이 내가 책에서 접할 수 있었던 최초의 ‘여성’이 아니었나 싶다. 육체를 가진 여성 말이다. 


<삼국지>도 ‘무협’에 속한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 내내 읽은 건 조풍연판 <삼국지>이다. 이건 당시 학생용으로 새로 나온 판본이었는데, 학교에 방문판매원이 와서 홍보를 해 단체로 구입했다. 12권짜리로 삽화가 들어가 있고 장정이 깔끔했다. 동생들과 앞 다투어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아마도 다섯 번은 통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에 다시 읽지 않았으니 그게 나로선 <삼국지> 독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아니, 처음은 따로 있었군. 계몽사에서 나왔던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에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가 들어 있었으니까. 덧붙이자면, 아들 삼형제의 맏이였던 탓에 <삼국지>를 읽으며 나는 주로 유비와 동일시했다. 둘째가 관우, 막내 동생이 장비.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삼국지> 이후에는 중학생 때 잠시 무협지에 한눈을 판 적이 있지만, 김용의 무협소설이 아닌 정말 싸구려 무협지였고 곧 눈길을 거두었다.

 

 


중학교 1학년 때쯤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을 읽었다. <검은 고양이>나 <어셔가의 몰락>, <황금벌레> 같은 작품이 기억에 남아 있다. 작품 해설을 통해서 알게 된 포의 불우한 인생사가 상승작용을 해서 나로선 헤르만 헤세 이전에 가장 좋아했던 작가가 바로 포였다. ‘애너벨 리’ 같은 시가 학생들 연습장 겉표지를 장식하던 시절이었으니 포와 친숙해진 건 자연스럽다. 그렇게 포는 잠시 거쳐 간 작가이면서, 대학에 와서 재발견한 작가이기도 하다. 두 가지 계기가 있는데, 하나는 이어령의 평론집 <저항의 문학>에서 포의 <절름발이 개구리>에 대한 비평을 읽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이론서들에서 <도둑맞은 편지>에 대한 라캉의 분석을 접한 것이다.

 

 

 

사실 포만 하더라도 미국문학의 고전으로 세계문학전집에도 들어가 있으니 더 이상 ‘장르문학’ 작가로만 한정할 수 없다. 그렇게 치면 최근 활발히 소개되고 있는 일본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미야베 미유키도 ‘고전’으로 읽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장르문학이란 건 본래 남모르게 읽는 재미가 절반인데, 대놓고 ‘고전’으로, ‘명작’으로 읽게 된다면 ‘장르문학다움’을 잃게 되는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만화도 예술”이라고 할 때 왠지 ‘만화다움’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때처럼. 


대학에 들어와 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는 장르문학을 애써서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나의 장르문학사’가 ‘한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르문학의 붐을 가져온 일본 추리소설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는 물론 <반지의 제왕>조차 읽지 않았다. ‘마법의 세계’에는 한 번도 매혹된 적이 없었다는 게 이유이긴 하지만, 장르문학 독자를 자임할 수 없어서 이런 글을 쓰는 게 어색하다. 그래도 기억을 떠올리고 보니 장르문학이 나의 독서력을 키워준 바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13. 11.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