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무거울 때는 가벼운 책을 읽으라는 수칙(?)에 따라 집어든 책이 로제 폴 드르와의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시공사, 2013)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여러 잡지에 칼럼과 철학평론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겸 철학자. 그런 역할에 걸맞게 철학의 문턱을 낮추는 책들을 써왔고, 국내에도 여러 권 소개돼 있다.

 

 

'이주의 책'을 꼽는 자리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은 원제가 <사유의 스승들>이며, <처음 시작하는 철학>(시공사, 2013)의 속편이다. <처음 시작하는 철학>은 원제가 <간략하게 보는 철학사>인데, 서양철학사를 대표하는 스무 명의 철학자를 간추려 소개한 책이다.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은 그 뒤를 이어어서 스무 명의 20세기 철학자를 소개한다.

 

책은 평이하기 때문에, 20세기 철학의 전체적인 그림을 아는 독자라면 잘 정리된 요약본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다(몇가지 새로운 정보는 팁이다). 그런데 약간 아쉬운 대목이 있다. 각장 말미에 '(누구누구의)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은?'란 물음에 답을 주는 것까진 좋은데(이건 원저의 형식인 모양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역자가 '(누구누구에 대해서) 좀더 깊이 알고 싶다면?'이란 코너를 덧붙이면서 국내 참고문헌을 몇권씩 소개했다. 친절한 배려이긴 하지만, 설득력 있는 리스트라기보다는 구색 맞추기 리스트에 가깝다는 게 문제다. 그건 역자가 이 분야의 서지에 별로 정통해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생기는 문제다.

 

 

 

가령 하이데거에 관한 장에서 '하이데거의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은?'이라는 물음에 '이기상 역, <존재와 시간>, 살림출판사, 2008'이란 서지를 적어놓았다. 같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살림출판사에 나온 건 이기상 교수가 역자가 아닌 저자로 쓴 <존재와 시간> 해설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번역서는 까치(1998)에서 나왔다. 그냥 검색결과만 보고 옮겨적은 게 아닌가란 의심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하이데거에 대해서 좀더 깊이 알고 싶다면?'이란 코너에서 세 권의 참고문헌을 소개하며 '하이데거와 나치'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제프 콜린스의 <하이데거와 나치>(이제이북스, 2004)를 넣은 것도 불만스럽다. 관련서이긴 하지만 문고본의 아주 얇은 책이다. 이 주제에 대해선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와 나치즘>(문예출판사, 2001)이 규모나 깊이 면에서 더 나아간 책이다(이 책은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철학과현실사, 2007)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사실 철학자들의 서지 정도는 검색만 해보면 다 알 수 있기 때문에, 몇 줄이라도 소개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면 딱히 필요하지 않다. 과도한 친절이 도리어 부실함만을 드러내준다면 굳이 애써서 핀잔을 감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막간에 하이데거 장에 이어서 읽은 건 데리다 장인데, 소득이 없진 않다. 데리다가 재수 끝에 1952년에야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재수한 건 알았지만 입학연도는 모르고 있었다. 데리다는 대학입학자격시험에서도 물먹은 전력이 있다. 이후에 철학자로서 얻은 명성에 견주면 아주 놀라운 낙차다).  

하지만 1952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면서 데리다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루뱅의 후설 기록보관서에서 일한 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하버드대학의 장학생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간 후, 1957년에는 보스턴에서 마르그리트 오쿠튀리에와 결혼하고(이후 1963년과 1967년에 두 딸을 낳았다), 알제리의 알제 인근 코레아에서 군인 자녀들을 위한 공립학교 교사로 군복무를 마쳤다.(315쪽)     

참고로 루뱅의 후설 아카이브에서 데리다는 후설 현상학을 공부하며 하버드 유학시절에는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탐독한다. 데리다를 성장시킨 두 경험이다. 그건 그렇고, 인용문에서 '두 딸'을 굵은 글씨로 표기한 건, 오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마르그리트(정신분석가이다)와의 사이에 두 딸이 아니라, 피에르와 장, 두 아들을 두었다. 아래가 장남 피에르.

 

 

두 아들이 모두 성정환 수술이라도 한 게 아니라면 '두 딸을 낳았다'는 건 낭설이다. 역자가 아들과 딸도 구별하지 못한 것일까. 사소한 대목이긴 하지만, 번역의 신뢰성을 잠식한다는 점에서 좀더 주의했더라면 좋았겠다...

 

13.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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