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가 얼마전에 생각나 구입한 책이 기타노 다케시의 <독설의 기술>(씨네21북스, 2010)다.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씨네21북스, 2009),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북스코프, 2009), <죽기 위해 사는 법>(씨네21북스, 2009) 등 2009년에 나온 몇 권의 책과는 안면이 있는데 그 이듬해에 나온 책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작년에는 <다케시의 낙서 입문>(세미콜론, 2012)도 나왔다.

 

 

다케시의 영화는 볼 용의가 있고, 얼마 전에는 근작 <아웃레이지>를 보기도 했기 때문에 선뜻 주문한 책이다(<자토이치>와 <하나비> 등이 인상에 남는 영화다. <아웃레이지>는 야쿠자 영화로 <하나비> 계열에 속한다).

 

 

그런데, 문제는 <독설의 기술>을 내가 <독서의 기술>로 잘못 읽었다는 점. 목차에서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스탕달의 <연애론> 등이 거명되고 있어서 당연히 제목도 <독서의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독설의 기술>이 훨씬 다케시다운 책 제목이지만, 내게 더 유혹적인 건 다케시의 <독서의 기술>이었다. '다케시가 이런 책도!'란 생각으로 주문했으니까.

 

 

결과적으론 책 얘기를 바탕에 깔고 있기에 <독설의 기술>을 <독서의 기술>로 오독한 게 낭패는 아니지 싶다(유사 타이들을 가진 책들 곁에 꽂아두어도 무방하겠다). 설사 <독설의 기술>로 읽었더라도 나는 책을 주문했을 것이다. 또 생각해보면, 부제 '세상에 독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곧 '독한 자세'는 '독설'뿐만 아니라 '독서'도 포함하는 것 아닌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다케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진정으로 부유한 나라란 쓰레기 같은 인간들마저 먹여 살리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도움이 안되는 놈들을 얼마나 먹여 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나라의 실력인 것이다.(42쪽)

이런 게 다케시의 독설이고 실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비트 다케시'의 진면목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 다케시가 보여주는 독설의 노하우는 이런 대목에 있다.

인간은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벗는 건 아무렇지 않아 해도 입는 건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스트리퍼도 무대에선 절대로 벗은 팬티를 입지 않으니까 말이다. 섹스할 때도, 일을 치르고 나서 팬티를 찾거나 콘돔을 벗기는 게 제일 부끄럽지 않은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먼저 벗길지 말지 망설일 때, 누가 슥 나와서 벗겨준다거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48쪽)

화장실에서 읽으려고 우연히 집어든 다케시의 책에서 한 수 배웠다...

 

 

13.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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