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에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책은 지난주에 나왔지만 오늘에야 다시 보고 관심을 갖게 된 아서 프랭크의 <몸의 증언>(갈무리, 2013). 원제가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The Wounded Storyteller)'이고, 이것을 번역본은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이란 부제로 풀었다.

 

 

 

저자는 '몸의 사회학' 분야에서 잘 알려진 이론가라고 하는데, 제목에 '몸'이 들어간 책들은 사실 많이 식상해져서 별로 구미를 당기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지나친 것인데, 책의 초점은 그냥 몸이 아니라 '상처 입은 몸'이고 그 몸이 내포하는 '이야기', 곧 내러티브다. 번역본의 제목이 그 점을 잘 부각시켜주지 못하는 듯하다. 관심을 끈 책 소개는 이렇다.

프랭크는 질병 이야기들을 크게 3가지의 서사로 구분한다. 첫째는 다시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고 돌아갈 것이라는 복원(restitution)의 서사로 이는 의학이 아픈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지배적 서사이다. 둘째는 질병이라는 폭풍우에 난파당한 상태에서의 웅얼거림과도 같은 혼돈(chaos)의 서사로, 이것은 일정한 서사 양식이 없다는 점에서 비(非)-서사의 서사이다. 마지막으로 탐구(quest)의 서사에서 질병의 경험은 일종의 여행으로서 그것을 통해 자아는 다시 형성된다. 그러나 프랭크는 이 서사 유형들이 상호배타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혼재되어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이것들이 유일한 서사 유형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곧 질병 내러티브의 유형학이 책의 핵심이다. 더불어 저자는 질병 경험담의 윤리학을 문제 삼는다. 저자 자신이  1991년에 암과 심장마비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인 <몸의 의지로:질병에 대한 숙고>(At the Will of the Body: Reflections on Illness)를 출간한 바 있다.

<몸의 증언>에서 질병의 서사의 유형을 분류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질병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의 윤리적 의미이다. 북미에서는 1970년대 말 부터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질병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 책에도 나오는, ‘웃음 치료’의 창시자로 알려진 노만 커즌스(Norman Cousins )나 희귀병의 체험을 비롯하여 많은 책들을 출간한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예다. 프랭크는 질병의 경험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질병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과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은 질병의 사회적 성격을 인식하고 질병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타자를 위한,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윤리로 나아가는 중요한 길이다.

이런 토픽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하다. 어제오늘 주문서 목록에 포함시킬 수 없었던 게 아쉽다...

 

13.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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