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문학쪽에서 '이주의 발견'을 꼽았다면 골랐을 책은 아일랜드계 미국작가 J. P. 돈리비의 <진저맨>(작가정신, 2013)이다.

 

 

"세계문학사상 최고의 문제작이자 J.P. 돈리비 최고의 걸작 <진저맨>이 국내 최고의 번역가 김석희와 만나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된다."라는 소개 문구에서 '세계문학사상 최고의 문제작'이란 것만 빼면 모두 맞는 말이기에. 1926년생인 돈리비는 아직 생존작가다. 사진은 조니 뎁과 돈리비. 조니 뎁은 이렇게 말했다.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반해 있는 책을 영화화해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 그게 바로 <진저맨>이다." 아마도 영화화된다면, 다시 주목받을 만한 작품.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해병으로 근무했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미생물학을 공부하다가 1967년 아일랜드 시민이 되었다. 1955년 상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반영웅적 인물 데인저필드를 등장시킨 활기 넘치는 코믹 소설 <진저맨The Ginger Man>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55년 프랑스에서 출판된 후 1958년 미국에서 발표된 이 소설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아일랜드와 미국에서 판매 금지를 당하기도 했지만,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오늘날 20세기 영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니까 29살에 쓴 데뷔작이 <진저맨>이고 이게 돈리비의 대표작이자 '20세기 100대 영미소설'의 하나라는 것. 소설의 문제적 주인공 시배스천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조니 뎁의 이미지와 잘 맞는 듯도 하다.

이 작품은 모두 3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배스천과 그의 아내, 친구들, 연인들이 등장한다. 시배스천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스물일곱 살의 청년으로 아내 메리언과 딸 펠리시티와 함께 살아간다. 집안의 가장이지만 가정을 돌보는 데 무책임하고,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공부는 뒷전인 데다, 술 마시고 여자를 유혹하는 데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다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것도 아닌, 기존 질서와 관념을 교란시키지만 사회적 저항도 아닌, 불결하고 불량하지만 품위를 강조하는, 거칠고 방종한 행동 이면에 당당하고 아름다운 비애가 흐르는 시배스천. 그에 대한 정의는 어떤 말로도 도저히 설명 불가능하다는 자가당착적인 설명으로만 가능하다.

 

역자인 김석희 선생이 "20세기 영문학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평한 <진저맨>의 문학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돈리비는 시배스천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불안과 허무 의식이 팽배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보편적 이상으로 부상한 과도기적 시대에 직면한 한 개인의 초상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20세기 영문학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소설 <진저맨>은 뛰어난 유머와 위트, 부조리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밀도 높은 문학적 감수성으로 출간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상의 열혈 독자들에게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이 반영웅이지만 동시에 시대의 초상이라는 것. 시배스천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보편적 이상으로 부상한 과도기"의 한 초상이라면 거꾸로 보편적 이상으로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부식돼가는 과도기의 형상은 무엇일까. 우리시대의 진저맨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13.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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