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오전에 일정이 없어서(원고를 제외하면) 잠시 쉬는 김에 어제 배송받은 바디우의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논밭출판사, 2013)를 들춰본다. 소련을 비롯한 국가공산주의의 붕괴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책으로 지젝이 몇 차례 언급하고 있어서 궁금하던 차였다.

 

 

책을 낸 출판사가 생소한데, 주소지가 충남 천안으로 돼 있는 곳이다. 2010년에 첫 책을 내고 바디우의 책이 세번째 책이다. 나는 네그리의 <욥의 노동>(논밭출판사, 2011)도 구입했었다(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읽어보려고 하면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다). 표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통상적인' 출판사는 아니다. 펴낸이와 옮긴이가 같은 걸로 보아 대표가 번역한 책을 펴내는 1인 출판사다. 주로 이론/철학서를 펴내는 것으로 보아 역자의 전공이 이 분야이거나 이쪽에 매니아적 관심을 갖고 있는 듯싶다(역자 소개에는 '젖소와 한우를 키우며 농사를 짓고 있다'고 돼 있다. 곧 출판사 대표이자 목장 경영주다. 그밖에 다른 경력은 나와 있지 않다).

 

 

흠,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바디우의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는 1998년에 나온 에세이로 분량상 팸플릿에 해당하는 책이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보다는 '두꺼운' 책이지만 프랑스어본도 100쪽은 넘기지 않을 걸로 짐작된다. 한국어판에서의 분량이 정확히 60쪽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140쪽 분량이 '역자의 공부노트'다. '역자 해제'가 길게 붙어 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데리다가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고 장문의 해제를 붙인 경우가 내가 아는 사례다. '후설'보다 '데리다'에 관심이 있어서 읽기도 하는 텍스트다. 하지만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는 사정이 다르다. 굳이 '역자의 공부노트'에까지 관심을 갖고 이 책을 구입한 독자가 얼마나 될까.

 

알라딘에 뜬 목차에는 'Ⅱ-Translator’s Note : 당-없는-정치 69'이라고 돼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통상적인 '역자 노트'라고 생각해서 무심코 지나쳤다. 69쪽 이하 전체가 '역자 노트'인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런 걸 일종의 '끼워넣기'라고 해야 할까(구매자 입장에서 보면 '끼워팔기'다). 사정이 그렇다면 책 표지에 바디우의 이름과 함께 역자이자 노트의 저자 이름이 들어갔어야 한다고 본다. 전체의 1/3만 수록하고 있는 글의 저자만 표지에 박아두는 것은 뭔가 공정하지 못하다. 그리고 독자를 오도할 소지가 있다. 아직 번역과 역자의 노트를 읽어보지 않아서 더이상의 판단은 유보하지만, 제목대로 '모호한 재앙'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든다.

 

 

조만간 방한할지도 모른다는 바디우의 책은 최근에 몇 권 더 나왔다. 공저 형태지만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문학동네, 2013)과 <아듀 데리다>(인간사랑, 2013) 같은 책들이다. 바디우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는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출학>(동녘, 2013)에 수록된 서용순 교수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미리보는 2013 인문교양 하반기' 목록을 보니 단독저작도 하반기에는 두어 권 예정돼 있다. 베케트에 대한 책,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책 등이다.

 

 

최근에는 <시네마>와 <철학과 사건> 등의 책도 영어본이 나와서 바로 주문해놓은 상태다. 그런 독서의 워밍업으로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를 집어들었는데, 흠, 독후감은 나중에 다시 적도록 하겠다...

 

13.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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