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3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여행' 기분은 잠시 내본다고 프랑스 저자들의 <여행 정신>(책세상, 2013)을 읽고 적었다. 여전히 '여행을 떠나는 자'보다는 '여행을 생각하는 자' 축에 속하지만, '여행 정신'만은 미리 챙겨놓을 수 있을 터이다. <여행정신>과 마찬가지로 '여행을 생각하는 자'도 읽어볼 만한 여행서로는 <여행자의 독서>도 손에 들 만하다. 독서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도 독서광들의 고질이라면 고질이겠다... 

 

 

 

주간경향(13. 07. 30) '세계'란 책을 읽고 싶다면 떠나라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지만 계절은 여름이고 날은 무덥다. 며칠이라도 휴가를 꿈꾸는 건 자연스럽다. 그 휴가가 제값의 의미를 갖는 건 보통 여행계획으로 꾸려질 때다. 단, 모두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두 부류가 생긴다. 여행을 떠나는 자와 여행을 생각하는 자. 장 피에르 나디르와 도미니크 외드가 쓴 <여행 정신>(책세상)의 미덕은 이 두 부류에게 모두 효용이 닿는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여행 전문가. 직업적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에 대한 식견이 안 생길 리 없다. 특이한 건 그걸 풀어놓는 방식이다. A로 시작되는 ‘Ailleurs(다른 곳)’에서 Z로 시작하는 탄자니아의 ‘Zanzibar(잔지바르)’까지 250개의 여행어를 표제어로 선정해 사전 형식으로 구성했다. ‘여행어 사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떤 의도를 갖는가? “이 새로운 안내서는 여행자의 눈에 쓰인 콩깍지를 벗겨내면서도 여행이 지닌 메마르지 않는 아름다움을 열렬히 예찬”하고자 한다. 거기에 여행에 관한 유명한 경구들도 얹었다.

 

대체 여행은 왜 하는가? 프랑스 작가 외제 다비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을 한 쪽밖에 읽지 못한 셈이다.” 곧 여행은 세계라는 책을 읽는 행위다. 특이한 건 세계라는 책이 정해진 순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비유컨대 이 책은 에피소드나 장면들의 카드로 구성돼 있다. 독서는 그러한 카드에 순서를 부여하면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여정은 여행자 각자가 세계라는 책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저자들이 제공하는 것은 그 이야기에 필요한 상용어 해제라고 할까.

 

'사전'이라고 해서 객관적인 정보만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전에 용례가 있다면 '여행어 사전'의 바탕은 체험담이다. 악명 높은 부다페스트 전차 12호선에 탑승했다가 열두어 명의 펑크족과 만나 잔뜩 긴장했던 경험을 소개하는 식이다. 한 노부인이 객차로 들어서길래 저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렸지만, 실제로 벌어진 건 열두 명의 패거리가 하나같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렇듯 의외의 일들과 맞딱뜨리게 되는 게 여행이기도 하다. 다시금 프랑스 비평가 이폴리트 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

 

여행을 떠나려면 물론 여행이 가능해야 한다. 알다시피 여행안내서의 세계지도에는 여행금지 지역 내지는 위험지역이 표시돼 있다. 프랑스에서는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알바니아라고 하는데, 2011년 아랍의 봄 이후에는 이 지역도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북한도 거명하면서 "언제쯤 우리를 맞아들여 저 미지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게 해줄까?"라고 언급한 대목은 프랑스 저자들의 시각임에도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가 우리에겐 여행 금지지역인 현실 말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멀리 가까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여행에 대해서 생각만 할뿐인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여행 정신>을 뒤적이며 각자의 여행 사전을 구성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런 여행예찬론과 마주하다 보면 엉덩이가 조금은 들썩일 만도 하다.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여러번 바꿔본 사람보다 더 완전한 사람은 없다."(알퐁스 드 라마르틴)

 

13.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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