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받은 계간지는 <자음과모음>(여름호)이다. 어느새 20호여서(창간된 지 만 5년이 됐다는 얘기다) '20호 기념 특별좌담'을 싣고 있기도 하다. 얼추 일별하고는 있었지만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겪어왔다는 걸 좌담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좌담의 타이틀이 그래서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고 붙여졌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호 리뷰란에 강병융의 <알루미늄 오이>(뿌쉬낀하우스, 2013)에 대한 리뷰를 청탁받고 실었다. 빅토르 최 헌정소설인지라 아주 오랜만에 빅토르 최에 관한 자료도 보고 영화 <바늘>도 찾아보는 기회가 됐다.

 

 

 

자음과모음(13년 여름호) 최승자는 어떻게 빅토르 최가 되었나

 

강병융의 『알루미늄 오이』는 읽는 소설이 아니라 듣는 소설이다. 그것도 카세트 테이프로 A면과 B면을 차례로 듣고 중간에 히든 트랙도 듣고, 나중에는 작가 인터뷰를 보너스 트랙으로 듣는 풀코스의 청각적 소설(실제로 책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소설의 각 장 제목이 된 노래와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건 독자의 선택이 아니라 작가의 선택이고 권유이다. 러시아 가수 빅토르 최(소설에서는 ‘빅또르 최’)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소설’을 제안받고 그가 내린 결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1980년대 러시아의 대표적 로커로서 페레스트로이카 시대를 풍미했던 러시아 대중문화의 영웅이자 전설을 한국소설로 어떻게 기념할 수 있을까. “독자들의 몸 혹은 마음을 ‘아주아주아주’ 조금이나마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쓴다는 강병융은 환생의 모티브와 알루미늄 오이라는 상징을 전면에 내세웠다. 빅토르 최의 사후의 삶, 곧 죽은 뒤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는 빅토르 최를 조명하기 위한 방책이다.   

 


1990년 여름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와 그의 그룹 키노의 인기는 정점에 다다라 있었다. 그해 그는 모스크바 올림픽 경기장에서의 대규모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고 일본과 한국에서의 공연 제안도 받은 상태였다. 28살의 빅토로 최는 당시 카자흐스탄 출신의 영화감독 누그마노프와 영화 <바늘>(1988)을 이미 찍은 상태였고 다시 그와의 새 영화 작업을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공연과 녹음, 촬영 등의 일정에 치이던 그는 휴식을 위해 라트비아의 리가 인근 별장을 찾는다. 어느 날 낚시 도구를 챙겨 혼자 차를 몰고 나섰다가 맞은편에서 오던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로 즉사한다. 8월 15일 새벽의 일이다. 사고 정황과 관련하여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그의 일부 노래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며 당시 대중의 인기는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아 있었다) 사고 원인은 빅토르 최의 졸음운전으로 발표된다. 여름이 아직 끝나기 전에 그의 여름은 노래 가사처럼 그렇게 끝났다.


빅토르 최의 죽음을 도입부로 삼은 강병융은 바로 이어서 같은 날 새벽 한국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아버지의 시점으로 기술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 잠시 정신을 잃은 아내는 뭔가를 타고 가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고 있던 거대한 무언가(버스)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 충돌의 순간 밝은 빛과 함께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의 이름이 최승자이다. ‘승자’는 물론 ‘빅토르’와 같은 의미를 갖는 이름이다.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가 죽는 순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 최승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면, 소설의 귀결은 응당 주인공의 ‘빅토르 최-되기’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빅토르 최가 노래했던 러시아 무대에 서서 그의 대표곡 <혈액형>을 부르는 것!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승자가 러시아어로 빅토르 최의 노래를 배우는 과정과 러시아에 가게 되는 과정. 그리고 작가의 솜씨는 이 두 과정에 대한 묘사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인터뷰에 따르면 소설은 ‘있음직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마치 있는 것처럼 태연하게 쓰는 것’이라는 게 강병융의 소설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전적으로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만 구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빅토르 최의 환생으로 태어난 최승자’라는 설정은 ‘있지도 않은 이야기’에 속하지만 최승자가 러시아 무대에서 빅토르 최의 노래를 부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최소한 얼마간은 ‘있음직한 이야기’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은 현실과의 접점을 전적으로 상실한 판타지로 넘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도 구상단계에서 빅토르 최와 한국과의 접점을 고민한 듯한데, 그가 찾아낸 것은 ‘소외된 사람’이라는 연결고리다. 단서는 빅토르 최 역시 한국계 러시아인(고려인)으로서 러시아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았을 거라는 점과 학교생활이 평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의 카자흐스탄에서 1962년에 태어난 빅토르 최는 가족과 함께 다섯 살 때 레닌그라드(지금의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한다. 열일곱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지만 학교생활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미술학교에서 낮은 성적 때문에 퇴학당하고 이후에 다닌 기술전문학교는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둔다. 하지만 보일러 수리공으로 일하면서도 빅토르 최는 록음악에 심취하여 곧 러시아를 깜짝 놀라게 할 노래들을 만들어낸다. 그룹 키노를 결성하고 데모 테이프로 입소문을 내다가 1982년엔 첫 앨범을 발표한다. 스무 살의 일이다.

 


당시 번지던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과 함께 곧 빅토르 최는 러시아 대중문화의 살아 있는 신화가 된다. 사회주의의 개혁이냐 몰락이냐, 라는 전환기에 놓여 있던 러시아 사회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고 빅토르 최는 그런 열망을 담담히 노래했다. 그의 노래 가사처럼 “쇳덩어리에는 열매가 나지 않는다”는 충고에 맞서 알루미늄 오이를 심었다. 그리고 그 오이는 열매를 맺었다! 불의의 죽음 이후에도 빅토르 최라는 이름은 그가 남긴 노래들과 함께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빅토르 최를 모델로 한 최승자의 성장기 역시 주변으로부터 소외된 삶이다. 그에겐 종이학을 잘 만드는 ‘전’만이 유일한 친구다. 둘은 ‘찐따’로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악마들’에게 얻어맞는다.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었던 승자에게 음악은 예외였다. 음악만은 그냥 그에게로 와서 친구가 됐다. 마치 화가가 꿈이었던 빅토르 최가 친구 막심이 들려준 블랙 사바스의 노래 <오키드>를 듣고서 음악에 감전된 것처럼, 미술을 좋아하던 승자도 어느 날부터 음악을 듣더니 아예 라디오를 끼고 산다. 그는 브라운아이즈의 노래 <벌써 일 년>을 듣고 즐겨 불렀다. 브라운아이즈의 노래는 물론 작가의 고백대로 시대성의 표지다.


음악에서만큼은 재능을 보인 승자가 러시아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는 그를 괴롭히던 악마들(패거리)이 2002년 월드컵 때 ‘너 같은 새끼’가 한국을 응원하면 재수가 없다며 ‘러시아 같은 나라’ 노래나 부르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러시아말로 노래 못 부르면 너 죽인다! 쏼라 쏼라! 시불스키! 이렇게 알았어?”). 다행스럽게도 승자에겐 ‘구세주’가 있었다. 사촌누나인 승희가 러시아어 전공자여서 그에게 빅토르 최의 노래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혈액형>을 처음 들은 승자는 빅토르 최의 노래에 무섭게 몰입한다.  


승희가 승자를 빅토르 최의 노래로 이끌어준다면, 빅토르 최와 직접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은 올가의 몫이다. 작가는 올가를 빅토르 최의 열성팬으로 그가 죽자 추모하는 의미로 3년간 노숙생활을 한 인물로 설정했다. 올가는 빅토르 최의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도 관심을 갖게 돼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경연대회에 입상해 한국에도 다녀간다. 2002년의 일이다. 빅토르 최와 윤도현 밴드의 음반을 사기 위해 들른 신촌의 음반 숍에서 올가는 블랙 사바스의 <오키드>가 흐르는 가운데 한국 점원과 빅토르 최에 관한 애기를 나누고, 월드컵 응원 열기가 한창인 도심에서는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빅토르 최의 목소리를 듣는다. 올가는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만나게 된 승희를 통해 그 신촌의 점원이 승희였고 그녀가 들은 빅토르 최 목소리의 주인공이 승자였다는 걸 알게 된다. 작가가 소설 한복판에 의도적으로 배치해놓은 가장 ‘있음직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할까. 하지만 이 마법적 순간은 이후의 모든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만능의 순간이기도 하다.

 

 

승희는 모스크바에 가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올가와 재회하고, 친구 전과 어머니를 잃은 승자도 2010년 승희의 초청을 받아 러시아로 간다. 8월에 빅토르 최 사망 20주기 페스티벌이 예정돼 있어서다. 승자의 노래를 듣고서 러시아 사람들은 “브라보, 빅따르 쪼이!”라며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승자는 모스크바의 명소인 아르바트 거리의 ‘빅토르 최의 벽’에도 가보고, 올가의 소개로 빅토르 최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누그마노프와도 만난다. 승자의 목소리에 반한 누그마노프는 승자를 빅토르 최에 관한 자신의 기록영화에도 출연시키며, 승자는 결국 사망 20주년 추모 공연의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다. 최승자의 ‘빅토르 최-되기’가 이렇게 완결되면서 소설은 끝난다. 아니 『알루미늄 오이』의 메인 트랙은 그렇게 일단락된다(책의 부록으로는 작가 인터뷰와 함께 빅토르 최의 노래 가사 원문이 작가의 번역과 함께 수록됐다).


‘빅토르 최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책으로 『알루미늄 오이』보다 조금 앞서 이대우의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뿌쉬낀하우스, 2012)이 출간된 바 있다. 그의 짧은 인생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며, 일종의 헌정 소설로서 『알루미늄 오이』는 그와 짝이 되는 책이다. 헌정 소설도 소설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절반은 ‘헌정’에 의의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인생을 살면서 안 되는 줄 알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안 되는 줄 알면서 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는 게 작가의 고백이다. 그것이 소설에서 승자와 올가가 땅에 심는 ‘알루미늄 오이’의 상징적 의미이자 동시에 이 작품의 메시지이다. ‘소외된 사람들’을 다룬 소설로서는 너무 추상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이것은 음악이 갖는 추상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빅토르 최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기억을 다시 상기시켜준 점에서는 작가의 노고가 결코 무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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