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가이자 에세이스트 샤를 단치의 <왜 책을 읽는가>(이루, 2013)가 출간됐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가 부제. 사실 이런 주제나 제목의 책이 없었던 건 아니고, 어느 정도는 내용을 짐작해볼 수도 있다, 고 나는 생각했다. 추천사를 청탁받고 처음 원고를 읽을 때 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참신했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적은 추천사가 이렇다.

 

 

걸어 다니는 모든 인류가 책을 읽는 건 아니며 책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지구가 멸망한다면 모든 책과 책에 대한 기억 또한 소멸할 것이다. 책을 읽는 인간에게 ‘왜 책을 읽는가’는 책의 탄생과 소멸 사이를 지탱하는 물음일 따름이다. 샤를 단치는 우리에게 독서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않는다. 독서는 다만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결투’일 뿐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패배할 테지만, 우리는 결연히 책을 읽어나갈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분류하자면 샤를 단치는 '아주 사적인 독서가'다. 독서를 권유하지도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독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뿐이다. 물론 독서는 대단히 이기적인 행위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그래도 독서를 통해서 우리가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면 그는 쿨하게 이렇게 답할 것이다.

독서를 우리는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원래 비열한 인간은 라신을 읽는다 해도 비열한 인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가 교양이 없다면 교양을 두른 비열한 인간으로 바뀔지는 모르겠다. 반대로 선한 사람이 나쁜 책을 읽는다 해서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독서의 나쁜 영향은 그것이 주는 좋은 영향력만큼이나 어리석은 신화에 불과하다.

역설적이지만, <왜 책을 읽는가>는 그래서 읽어볼 만하다. 책을 안 읽던 사람이 이 책을 읽고서 갑작스레 독서가로 변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애서가들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넘길 것이다. 어떤 애서가인가? 저자가 그랬듯이 어릴 때 "밖에 좀 나가 놀아라!"란 잔소리를 자주 듣던 이들 말이다(방안에서 책만 읽는 아이들이 즐겨 듣는 잔소리). 또 이런 경험은 어떤가.

열두세 살쯤의 일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줄 베른의 책을 선물해준 적이 있다. 그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헤첼 총서 문양이 찍힌 포켓판 책 표지 이미지와 함께 아직도 내 뇌리에 충격으로 박혀 있다. 세상에! 나를 어린애로 여기다니! 아, 어른들이여. 나는 당신들의 음모를 잘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안전한 독서로 유도하여 우리를 좀 더 유순하게 길들이려는 속셈 아닌가!

거기에 이어지는 에피소드가 6학년 때 보들레르의 시집을 탐독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학교 선생님께 불려가 일장 설교를 들어야 했다는 얘기다.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읽는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염려라고나 할까. 하지만 저자 샤를 단치의 독서 교육론은 이런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읽히라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독서에 대해 종종 강의하면서 '나이'와 '수준'을 자주 들먹이던 나 자신을 잠시 반성했다. 그래, 진정한 독서는 어쩌면 나이에 맞지 않는 독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에 맞지 않는 독서는 오히려 아이들의 미적 감수성을 일깨울 것"이라니까. 다만 단치가 염두에 두고 있는 책은 무슨 철학 고전류가 아니라 주로 문학작품들이다.

 

여하튼 초등학생이 <안나 카레니나>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는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굳이 미심쩍은 시선을 보낼 일은 아닌 것. 나중에 아이가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최소한 자기만의 <왜 책을 읽는가> 한 권쯤은 써제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13. 04. 18.

 

 

 

P.S. 독서 에세이 범주에 속하는 책들은 거의 매주 출간된다. 이번 주에 눈에 띄는 책은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의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작가정신, 2013). "얀 마텔이 자국 캐나다의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격주로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이다. 무려 101통이나 되는 이 편지에서 얀 마텔은 일관되게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지도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상기시키면서 때로는 반짝거리는 새 책을, 때로는 누군가의 악필이 남겨진 중고책을 함께 보냈다."

 

국내서로는 시사IN 문정우 기자의 서평집 <나는 읽는다>(시사IN북, 2013)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의 <침대 밑의 책>(마카롱, 2013)도 침대 옆에 놓아둘 만하다. 윤성근의 책은 "어쩐지 보고 싶지 않은 것과 마주한 날, 어쩐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 생각난 날, 어쩐지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는 날이면 침대 밑의 책을 펴드는 책 탐닉자의 은밀한 책읽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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