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볼 만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일일이 눈길 한번 주기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어제 잠시라도 손에 든 책은 존 캐스티의 (반비, 2013)이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짐작할 수 없는데, 저자는 응용수학자로서 랜드연구소와 산타페연구소에서 일한 적이 있는 복잡성 과학 전문가다. 그리고 'X사건'이란 전혀 예기치 않은 뜻밖의 사건, '극단적인 사건'을 가리킨다. 9.11 테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이 X사건의 예다. 발생 확률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인류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사건들. 그런 사건들이 왜 발생하며 어떻게 방비할 수 있는가가 책의 관심사다.

 

 

책에 흥미가 생겨서 저자의 경력에 대해 알아봤는데, 맙소사, <대중의 직관>(반비, 2012)의 저자였다. 기억엔 리뷰기사를 읽고 책을 구해놓긴 했지만 제목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진지하게 들춰보진 않은 책이다. 하지만 원서는 좀 다르다.

 

 

원저의 표지와 제목이 너무 매혹적인 것과 비교하면 번역본은 '안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밋밋하다. 이게 일단 첫번째로 놀란 것이고, 두번째로 놀란 건 저자의 책을 이미 읽은 적이 있다는 것. 절판된 책 가운데 <복잡성 과학이란 무엇인가>(까치글방, 1997)가 그것이다.

 

 

90년대 중반에 한창 복잡성 이론이 유행을 타면서 관련서들이 다수 번역됐었는데,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동문사, 1993), 로저 르윈의 <컴플렉시티>(세종서적, 1995) 등과 함께 읽었던 책이다. 덧붙여 <괴델>(몸과마음, 2002)도 괴델에 관한 다른 책들과 함께 구입한 적이 있다. 그 사에 놓친 책이 <인공지능 이야기>(사이언스북스, 1999)인데, 현재는 절판됐다.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가 그간에 한층 업그레이드됐을 터이니 아쉽지 않지만, <현대과학의 6가지 쟁점>(지식의풍경, 2005)은 절판된 게 아쉽다. 중고서점까지 다 뒤져봤지만 흔적이 없다. <20세기 수학의 다섯 가지 황금률 1,2>(경문북스)가 그나마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1권은 갖고 있는 듯하다.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한동안 수학사 책들을 모은 적도 있기에).

 

 

여하튼 상당한 구면의 저자라는 걸 알고 좀 놀랐다. 게다가 작년엔 방한 강연까지 했다.   

 

 

 

'X사건'하면 아무래도 가장 먼저 문명의 붕괴를 떠올리게 되는데, 저자 역시 조지프 테인터의 <문명의 붕괴>(대원사, 1999)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김영사, 2005)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유타주립대학교의 고고학자로 오랫동안 고대사회를 연구해온 조지프 테인터는 현대 세계의 점증하는 복잡성이 결국 인간이 실패하는 원인이 될 거라고 심각하게 걱정한다.(그는 고전이 된 1988년의 저서, <문명의 붕괴>에서 이 점에 관한 견해를 정리했다.) 테인터는 인간이 수렵 채집 상태를 벗어나 집단을 이루어 정착하기 시작하며서 예측 불허의 자연을 극복하고 덩치가 커진 집단의 생존을 위해 늘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도시관리 체계나 그 체계를 뒷받침할 재원을 모으는 세무 당국, 방위 체계 등 여러 차원의 조직이 추가됨에 따라, 각 단계에 지불되는 비용이 발생한다. 테인터는 이 모든 비용의 공통통화는 에너지이며, 단계를 추가함으로서 점증하는 시스템의 복잡성은 결국 수익 감소 법칙으로 이어진다고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에너지가 더 많이 소비될수록 추가되는 이익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62쪽)

테인터의 <문명의 붕괴>는 현재 절판된 상태라서 어제 중고책을 주문했다. 여하튼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데 모아서 읽어봄직하다. <블랙 스완>(동녘사이언스, 2008)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이렇게 추천했다. "나는 존 캐스티의 열혈 독자다. 그는 진정한 과학자이다." 아직 '열혈'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그의 독자다... 

 

13. 0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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