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를 다뤘는데, 여러 모로 조선 후기의 역사를 다시 보도록 자극하는 책이었다. 덕분에 조선사 관련서 몇 권을 새로 구입했고, 저자의 <양반>(강, 1996)도 다시 구입했다.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역사비평사, 2003)도 같이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의 책이 몇권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조선사회의 기본 성격에 관한 활발한 논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주간경향(13. 02. 05) 동아시아 시각으로 본 소농사회의 유산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제목대로 일본의 대표적 한국사 연구자 미야지마 히로시가 40년에 걸친 한국사 공부를 정리한 책이다.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연구 이력과 여정에 대한 술회를 포함하고 있어서 ‘공부’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란 부제가 내용을 더 잘 말해준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한국사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역사인식에 있어서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군림했던 서구 중심적 인식을 비판하는 데 놓인다. 가령 그가 보기에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적 입장으로서 내재적 발전론이나 자본주의 맹아론은 여전히 서구식 역사발전 도식을 적용한 것으로, 조선사회의 독자적인 성격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미흡하다. 동시에 일본사 연구에서 일본과 유럽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탈아(脫亞)적 경향도 서구 중심의 근대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과 일본의 주류 역사학이 놓치고 있는 것은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근대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서구 모델에 대한 비판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소농사회론’이다. 소농사회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거나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빌리거나간에 기본적으로 자신과 그 가족의 노동력만으로 독립적인 농업 경영을 행하는” 소농이 지배적인 농업사회를 지칭한다. 저자는 17∼18세기의 동아시아 사회를 그러한 소농사회로 파악한다. 그가 ‘가설’이라고 부르는 소농사회론은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가.

동아시아에서는 1000년부터 1750년까지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급속한 인구 증가가 일어났다. 인구 조밀지역으로 전환된 것인데, 이 시기에 농업에서 일대 변혁이 이루어졌다. 변혁의 요체는 농업의 중심이 밭농사에서 논농사로 이동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 농업의 중심이 화북 밭농사에서 강남 논농사로 이동했고, 시기와 규모는 다르지만 이러한 변화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조선에서는 15∼16세기에 활발한 농지 개발이 이루어져서 국토가 일본의 약 4분의 3밖에 되지 않음에도 근대 초기의 일본과 거의 같은 경지면적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경지 개발을 추진한 주요 계층이 중국 사대부, 한국 양반, 일본 무사 계층이었다.

농지 개발과 농업기술의 변혁을 통해서 집약적인 수도작이 이루어지자 지배계층의 존재양식도 변하게 된다. 조선의 경우 17세기에 들어서 노비를 이용한 양반의 직영지가 급속하게 감소하는데, 이유는 노비를 이용한 농업 경영이 대단히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독립적인 농민계층이 점차 소멸하고 소농사회가 성립하는데, 이는 농업 형태와 촌락 구조뿐 아니라 사회 구조와 국가의 지배형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정치적 지배와 토지 소유의 분리 및 민중의 균질화가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다.

저자에 따르면, 양반계층이 일반 농민보다 훨씬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더라도 그 소유권은 일반 농민이 소유지에 대해 갖는 권리와 질적으로 동등했으며 지배층의 특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 소경영 농민의 보편적 존재로 인한 민중의 균질화는 주자학의 통치이념인 일군만민(一君萬民)체제를 뒷받침했다. 소농사회라는 사회구조가 비로소 주자학의 본격적인 수용과 유교 통치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구조의 대변동에 견주면 동아시아에서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의미가 크지 않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실로 많은 것을 소농사회의 유산에서 힘입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동아시아적 시각’이라는 폭넓은 연구 시야와 농업경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한국사 이해에 새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13. 01. 30.

 

 

 P.S. 조선사회의 성격에 관한 논쟁에서 핵심은 농업경제의 구조다. 김용섭 교수의 <조선후기농업사연구1,2>(지식산업사)가 문제제기적 저작인데, 방대한 분량의 전문학술서라서 일반 독자로선 엄두를 내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회고록만을 구해놓고 있는데, 좀더 평이하게 핵심적인 주장을 간추린 책이 나왔으면 싶다. 김용섭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는 이영훈 교수의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서울대출판부, 2004)도 참고할 수 있는데, 아직 장바구니에만 넣어둔 책이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이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덕분에 관심을 갖게 돼 김건태 교수의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역사비평사, 2004)도 구입했다. 흠, 농업경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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