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서울대 대출도서 1위'라고 알려지면서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문학사상사)를 소개하면서 단상을 보탰다(저자의 이름 Jared는 합의된 표기방식이 없는지 제각각 표기되고 있다. 번역본에는 '재레드'로, 알라딘과 몇몇 언론에서는 '제레드'로 표기한다). 개인적으론 다이아몬드의 주요 저작 세 권을 원서와 함께 다시 구입해서 읽고 있다. 그의 신작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경향신문(12. 11. 02) ‘도둑정치’와 어떻게 단절할 것인가

 

가을이 깊어가면서 올해의 달력도 마지막 두 장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출판계 기준으로는 이달이 마지막달이다. 보통 전년 12월부터 올 11월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올해의 책을 선정하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12월에는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리는 대선이 있기에 책은 대중의 관심사가 되기 어렵다. 화제를 모을 만한 책이라면 그런 ‘경합’을 피해 출간을 앞당기거나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특별한 주목거리가 된 책이 있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으로 알려지면서 신간이 아님에도 종합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른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란 책이다. 1998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국내에서도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힌 명저이지만 이만한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묵직한 인문서가 ‘서울대 대출도서 1위’라는 타이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가. 생리학자로 출발했지만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에도 정통한 저자는 조류의 진화를 연구하기 위해 뉴기니 섬에 체류하다가 한 원주민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쇠도끼와 성냥, 의약품에서 우산에 이르기까지 백인들이 들여온 온갖 새로운 물건을 뉴기니 사람들은 ‘화물’이라고 불렀다. 왜 한쪽에는 화물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없느냐는 원주민의 물음을 저자는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대륙마다 다른 속도로 진행됐을까?”란 질문으로 바꾸고 25년 만에 그 해답을 내놓는다. 바로 <총, 균, 쇠>이다.

저자는 민족마다 다른 역사 진행의 차이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환경적 차이 때문에 빚어졌다고 본다. 지리적 환경과 생태 환경의 차이가 궁극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역사학자들은 흔히 환경결정론이라고 무시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지식과 자료, 그리고 현장탐사의 경험을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그에 따르면 BC 1만1000년경에 시작된 농경(식량 생산)이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전환은 사회의 지배적 형태를 바꿔놓는다. 다이아몬드는 사회형태를 무리, 부족, 추장사회, 국가로 구분하는데, 농경으로 인한 인구 증가는 점점 더 규모가 큰 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했다. 이렇게 규모가 커지면서 계급이 형성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나뉘는 비평등사회가 탄생한다. 추장사회와 국가를 특징짓는 비평등사회는 개인이 엄두를 낼 수 없는 일도 해치우지만 한편으론 평민들에게서 빼앗은 것들로 상류층을 살찌우는 ‘도둑정치’의 기능도 갖는다. 대규모 사회는 복잡한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사회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거나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 가장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앙집권화를 통해서 권력이 집중되면 권력자는 자신과 친척 및 주변사람들의 배를 불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여러 집단들을 보더라도 자명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장물 논란을 빚고 있는 정수장학회 문제도 그렇고, ‘은닉재산’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시가 30억원 상당의 땅을 딸에게 증여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나 내곡동 특검에 가족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일가를 보아도 그렇다.

국가와 같은 대규모 사회는 중앙집권화될 수밖에 없고 또 이 중앙집권화는 도둑정치로 귀결되기 쉽다면, 진정한 문명과 새정치의 척도는 ‘도둑정치’와 어떻게 단절할 것인가이다. 그런 혁신의 기회를 우리는 잡을 수 있을까.

 

12. 11. 02.

 

 

P.S. '도둑정치'와 관련한 내용은 책의 14장에서 가져왔는데, 우리말 번역에는 오류가 있다. 아래 대목이다.

이처럼 갈등 해결, 의사 결정, 경제, 공간 등의 문제를 모두 고려했을 때 대규모 사회가 결국 중앙 집권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권력이 집중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권력을 가진 사람들(즉 정보를 독점하고 결정을 내리고 물자를 재분배하는 사람들)이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과 친척들의 배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여러 집단을 보더라도 자명한 일이다.(417쪽) 

강조한 대목이 정반대로 옮겨졌는데(그러니 거꾸로 혁신정치의 기대치이다!), 원문은 이렇다. "But centralization of power inevitably opens the door - for those who hold the power, are privy to information, make the desions, and redistribute the goods - to exploit the resulting opportunities to reward themselves and their relatives. To anyone familiar with any modern grouping of people, that's obvious."(288쪽) 곧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과 친인척의 배를 불릴 기회를 갖게 되며, 알다시피 그들은 그걸 마다할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내곡동 특검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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