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11호)에서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착각'으로 착각에 관한 책들이 여럿 눈에 띄길래 골랐다. 착각에 관한 통념 혹은 착각을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이다.

 

 

 

책&(12년 10월호) 착각

 

“어떤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하는 현상”을 착각이라고 정의한다. 착각은 오류이므로 피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가 곧잘 주고받는 “착각하지 마!”란 충고는 착각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듯싶다. 하지만 착각에 대한 이런 통념이야말로 착각에 대한 전형적인 착각이라면? 착각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무엇인가. ‘착각’을 주제로 한 책들을 몇 권 골라본다.


가장 먼저 꼽고 싶은 책은 독일의 뇌과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프리트헬름 슈바르츠의 <착각의 과학>(북스넛, 2011)이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착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간명한 정의를 내려주고 있어서다. “착각은 뇌의 일상적인 활동”이라는 것.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뇌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활동이 바로 착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뇌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현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원하지만 뇌는 기억과 체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만 원한다. 이런 차이를 신경과학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라고도 설명한다. 착각의 가장 주된 원인은 바로 의식과 무의식 간의 불일치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생각과 결정은 어떻게 내려지는가. 무의식의 힘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를 보자. 두 그룹의 대학생들에게 어휘력 실험이라며 두 가지 단어군을 제시했다. 한쪽엔 활력, 스포츠, 근육 등 젊음과 관련된 단어를 보여주고, 다른 쪽엔 늙음, 질병, 황혼 등의 단어를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그 단어들을 이용해 짧은 글을 짓게 하고 돌아가게 했는데, 정작 실험의 초점은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젊음과 관련된 단어를 제시받은 참가자들은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올라간 반면에, 늙음과 관련된 단어를 받았던 학생들은 아주 느릿느릿 계단을 올라갔다. 자신의 처지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은 그 단어들을 자신과 동일시한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뇌는 그렇게 우리를 움직인다. 때문에 인간은 이기적 계산속에 따라 움직이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반응하는 ‘호모 레시프로칸스’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착각은 우리를 이성의 독재로부터 해방시킨다고까지 말하면 과장일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심리학 블로그 운영자인 데이비드 맥레이니의 <착각의 심리학>(추수밭, 2012)은 초점이 조금 다르다. 원제가<당신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You are not so smart)>인 것에서 알 수 있지만 저자는 우리가 똑똑하다는 착각을 교정하고자 한다. 물론 착각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우리의 사고를 구성하는 ‘인지적 편견’과 ‘발견적 학습’, 그리고 ‘논리적 오류’가 끊임없는 착각의 동력이다. 가령 당신은 “나의 행복은 오직 이 순간을 만족하는 데 달려있다”고 생각하는가? 착각이다. 우리의 자아는 ‘현재의 자아’ 곧 실시간으로 인생을 ‘경험하는 자아’ 외에 ‘기억하는 자아’로도 구성된다. 우리는 감각상의 기억이 지속되는 3초 정도의 순간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면서 산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행복해야 할뿐더러, 나중에 되돌아볼 기억을 만들어내야만 행복할 수 있다.

 


<착각의 심리학>은 그런 다양한 오해와 진실을 흥미롭게 펼쳐놓는데, 또 다른 사례는 마술사들의 눈속임이다. 마술 쇼는 ‘무주의 맹시’와 ‘변화 맹시’에 근거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주의를 집중할 때 그 배경에는 무주의하게 되는 현상을 마술사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인지능력의 한계를 이용한 이러한 눈속임이 마술 쇼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쓴 <보이지 않는 고릴라>(김영사, 2011)는 바로 그런 착각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들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착각을 주의력 착각, 기억력 착각, 자신감 착각, 지식 착각, 원인 착각, 잠재력 착각 등 여섯 가지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더불어 세 명의 신경과학자가 쓴 <왜 뇌는 착각에 빠질까>(21세기북스, 2012)는 ‘마술의 신경과학을 다룬 최초의 책’으로 마술의 눈속임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의 착각과 착시를 본격적으로 해부한다. 저자들이 폭로하는 착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착각인데, 서로 상충하는 두 가지 생각, 행동, 사실, 믿음 등이 갈등할 때 우리는 뇌는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들 가운데 하나를 부각시키는 방법을 쓴다고 한다. 그런 인지부조화가 우리로 하여금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믿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늘 착각 속에서 산다면 처방은 무엇인가.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 2012)의 저자 허태균 교수는 간명하게 답한다. 착각해야 행복하다면 그냥 이대로 살아도 좋다고. 다만 가끔씩 “혹시 내가 틀린 것 아냐? 착각하는 거 아냐?”라는 의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착각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더 현실감을 갖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걸로 충분한 것일까?

 

1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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