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우의 <철학콘서트>(웅진지식하우스) 3권 세트 부록에 실릴 글을 옮겨놓는다. 철학은 배워서 어디에 쓰는지, 혹은 철학 공부의 의의란 무엇인지 써달라는 게 편집자의 주문이었지만, 그런 건 각자가 '고안'할 문제라는 생각에, 나대로 철학과의 만남 이야기를 적었다.  

 

 

 

당신에게 철학은 무엇이었나? <철학콘서트> 세 권을 마주하니 내게서 철학은 무엇이었던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언제였던가. 처음 철학적 물음에 붙들린 때가. 조금 진지한 관심의 시작이라면 실존주의 작가들을 즐겨 읽던 고등학교 시절부터가 아닌가 싶다. 가령 사르트르 같은 경우. 나만의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때는 사르트르야말로 작가이자 철학자의 대명사였으니까. 

 

 

 

게다가 윌 듀런트의 <철학 이야기>를 읽은 것이 철학에 대한 관심을 배가시킨 것으로 기억된다. 고3 어느 때인가 서점에 가서 철학 코너를 둘러보다가 고른 것으로 내겐 철학 공부의 ‘이유식’과도 같은 책이다. 나중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주채(周采)의 <중국철학 이야기>란 책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철학책에 대한 독서는 ‘이야기’에서 시작됐다(이 책을 펼쳐든 독자라면 대부분 ‘콘서트’에서 시작하겠지만). 그리고 그 이야기의 자연스런 귀결이, 혹은 ‘다시 시작해보자’는 반복적인 귀결이 대학 첫 학기 ‘철학개론’ 신청이었다.


그렇게 신청한 철학개론 수강 이야기를 계속해보면 좋겠지만, 반전이 있다. 나는 철학개론을 듣지 않았다! 수강신청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책까지 구매했지만, 어쩐 일인지 수강에 자신이 없어졌다. 아마도 최소한 플라톤부터 시작하는 철학개론을 상상했던 나에게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을 거라던 노(老) 교수의 말이 부담이 되었던 듯싶다.


비록 철학개론과의 조우는 불발로 그쳤지만, 이야기는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3학년이 되자 철학개론은 건너뛰고 ‘현대사회의 철학적 이해’ 같은 과목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교양 수준의 사회철학 강의였는데, 당시엔 에리히 프롬이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를 읽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미완의 기획으로 끝났다. 첫 번째 리포트를 과제로 제출하고는 군대에 가게 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학부 시절에 단 한 과목의 철학 강의도 듣지 않았다.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서야 철학과 대학원의 개설 강좌를 몇 개 수강하거나 청강한 것이 정식으로 쌓은 ‘이력’의 전부다.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철학 공부와는 대체로 무관해 보이는 나의 공부 이력은 어떻게 제 갈 길을 찾았을까? 강의실 바깥에 광대무변했던 ‘철학 학교’와 ‘철학 교사’ 덕분이었다. 그것은  바로 책이다. <철학 이야기> 이후에 내가 주로 읽은 책은 서양철학 쪽으로는 박이문 교수, 동양철학 쪽으로는 도올 김용옥 교수의 책이었다. 다작의 저자들이기도 한 이들의 책을 거의 대부분 읽었다.


어떤 책들을 줄기차게 읽어나갈 수만 있다면 사실 저자는 상관없다. 그리고 어디에서 시작하더라도 무방하다. 나 같은 경우도 아무도 내게 무엇을 읽으라고 지도하거나 권유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자연스레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독서의 길을 안내하는 법이다. 철학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단지 첫 번째 책을 손에 들게끔 할 만한 물음을 갖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흔히 ‘~란 무엇인가’란 물음의 형식을 발명해냈다고 말한다. 그 물음의 형식에 붙들릴 때 우리는 오갈 데 없이 철학의 길, 철학적 사유의 오솔길에 들어선다. 정의란 무엇인가, 청춘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이 모두 그런 물음에 속한다. 전공으로서 철학 공부는 물론 별개의 문제다. 오직 소수만이 철학에 대한 성향을 타고난다는 게 플라톤 이래의 정설이다. 그러니 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철학자들의 문제, 그들만의 고민으로 제쳐놓기로 하자. 하지만 특별한 철학적 성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철학적 문제들도 존재한다. “선생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같은 황광우의 물음이 그렇다.

 

‘철학콘서트’의 저자는 자신이 ‘철학의 초심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란 물음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사상가들’의 ‘위대한 생각들’에 대한 탐구의 오랜 여정으로 이끌었다. 그가 얻은 결론은 무엇인가? “철학이 죽음 앞에 선 우리의 고뇌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풀기 힘든 난제에 대한 색다른 사유를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이제 독자에게 또 다른 질문거리다. “과연 그러한가?”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우리는 ‘콘서트’가 끝난 자리에서 다시금 새로운 철학 여정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물음이 있는가? 그 물음이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그 물음에 따라서 우리들 각자의 철학적 사유, 각자의 철학 콘서트를 시작해보기로 하자. 

 

12.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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