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8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주말까지 강의를 하고 1박2일 휴가를 다녀오는 바람에 서평을 썼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폴 우드러프의 <최초의 민주주의>(돌베개, 2012)에 대한 것인데, 책의 몇가지 논점에 대해서는 관련서들을 더 읽고서 따로 다루고 싶다. 저자의 책으론 <연극의 필요성>도 이번에 구입했는데, '민주주의와 연극'이란 주제를 다루는 듯하다. 소개됨직한 책이다... 

 

 

 

주간경향(12. 08. 14) 아테네 민주주의는 무엇을 추구했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람들에 의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다. 그 ‘사람들’ 대신에 ‘국민’이나 ‘인민’이란 말을 넣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상식이다.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투표? 다수결의 원칙? 대표선출제?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민주주의의 구현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민주주의의 대역(代役)이고 그림자일 뿐 그 자체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재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폴 우드러프의 <최초의 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이 그렇다. 잘못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 “우리가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대역들에 이끌린 채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모범적인’ 민주주의의 실례를 참조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가 모범으로 삼은 것은 ‘최초의 민주주의’, 곧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다. 완벽해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고안한 주인공들이지만 아테네 민주주의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결함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이상을 향한 그들의 끊임없는 도전만큼은 오늘날까지도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다.

 

최초의 민주주의가 지향했던 이상은 무엇인가? 저자는 일곱 가지 이념을 지목한다.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 조화, 법에 따른 통치, 본성에 따른 자연적 평등성, 시민 지혜, 지식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추론, 그리고 일반 교양교육이 그가 꼽은 일곱 가지 이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인데, 저자는 최초의 민주주의의 본질적 특징이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와 모든 시민의 평등한 정치참여라고 본다. 참주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법 밖에서 통치하는 군주를 가리킨다. 요즘이라면 독재정치에 가깝겠지만,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개인이 아닌 집단도 참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주정은 흔히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등장하기에 곧바로 알 수는 없고 징후를 통해 식별해야 한다. 저자가 일러주는 참주정의 징후는 이렇다. 정치적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이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말로는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법 위에 세우려 한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받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는 자로부터는 조언이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이런 징후들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즉각 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유의 본질, 곧 아테네 시민이라면 민회에서 발언할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하기에 참주정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은 민주주의가 다중(多衆)에 의한 참주적 정치체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령 다수결이 대표적이다. 흔히 다수결 원칙과 동일시되는 중우정치는 저자가 보기에 참주정의 일종일 뿐이다. 소수를 위협하고 배제하며 다수에 의한 독재에 종속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참주정에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방책은 무엇인가. 교양교육으로서 ‘파이데이아’에 주목하게 되는데, 시민교육으로서 파이데이아의 목표는 전문적인 지식 훈련이 아니라 전문가의 주장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갖게끔 하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그런 교육의 대표적 수단이 연극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극작품을 보면서 정치적 사안과 활동에 대해 따져볼 수 있었다. 오직 아메리칸 풋볼리그 결승전인 슈퍼볼 시청에만 열중하는 게 대다수 미국인의 현실이라면 과연 최초의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저자는 묻는다. 우리도 질문에서 비켜나지 않는다. 과연 우리의 파이데이아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12.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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