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어제와 그제 연거푸 지방 고등학교 강연이 있었는데('책을 읽을 자유'가 주제였다), 여전히 독서량이나 독서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듯싶어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번 더 적었다.
경향신문(12. 07. 13) 넌 왜 공부 안 하고 책을 보니?
지방 고등학교에 두 차례 특강을 다녀왔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덕분에 처음 가본 지역의 풍광도 즐기고 신선한 공기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강연은 어려웠다. 입시에 시달리는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독서의 중요성과 즐거움에 대해, ‘책을 읽을 자유’에 대해 강의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지난 봄에도 한 번 체험했지만 사정은 많이 나아지지 않았다. 먼젓번보다는 적은 수의 학생들이 참석했기에 집중도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의 학생들에겐 재미없는 ‘정신교육’ 정도로 여겨지는 듯했다. 하긴 ‘책을 읽어라’는 지당한 권고만큼 따분한 소리도 없을 테니까.
한 반에서 서너 명씩의 신청자만 참여한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독서량을 물으니 대다수가 한 달에 한두 권 정도라고 답했다. 다섯 권 이상이라고 답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학생들만 탓할 수도 없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의 독서량은 한 달에 한 권꼴로 OECD 가입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우선이고 독서는 나중’이라는 게 한국사회의 암묵적인 합의다. 한국의 문화코드라고 말해도 억지는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너는 왜 공부 안 하고 책을 보니?”라는 말을, 이 이상한 말을 다 이해한다. 공부와 독서가 상호배제적이라는 전제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전달이 불가능한 말이다. ‘독서가 곧 공부’인 문화에서라면 이 말은 “너는 왜 공부 안 하고 공부하니?”라는 뜻으로 번역될 것이니 얼마나 부조리한가. 이러한 부조리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부와 독서가 분리된 문화를 둘이 일치하는 문화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책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 즉 독서력이 곧 ‘대학수학능력’이라는 인식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기본 독서력을 갖춘 학생에게라면 대학의 문호는 활짝 열려 있어야 마땅하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문제풀이가 아니라 독서이기 때문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해 첫 학기를 보낸 한 여학생의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독서와 토론을 즐기고 논술에도 자신감을 갖고 있던 학생이었지만 내신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너무 쉽게 출제되는 학교시험에서는 한두 문제만 틀려도 내신이 추락하기 마련인데, 더군다나 이 학생은 암기과목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런 공부는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공부는 달랐다. 강의별로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조사하고 리포트를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일이 아주 즐거웠다고 했다. 당연히 첫 학기 성적도 학과에서 두 번째로 좋았다. 요컨대 대학에서의 공부는 곧 독서였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교육을 위한 전 단계 정도로만 간주된다. 그런 인식에 반대하여 입시교육 비판도 나오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나로선 그 정상화가 입시교육과 대립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작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제대로 된 입시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 아닌가. 대학에서의 공부를 위한 수학능력을 갖추는 데 소홀하다면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입시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학생들이 독서를 멀리하는 대신에 공부에 매진하여 대학에 입학은 한다. 하지만 독서력이 부족해서 대학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허덕인다. 게다가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알바’까지 하게 되니 독서는 대학에 와서도 먼 나라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평균독서량이 올라가기를 기대하는 건 무망한 일이다. 이제라도 독서가 곧 공부인 교육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겐 다른 공기가 필요하다.
12. 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