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강연장에 가기 전에 이번주 주간경향(98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분량상 지면에서 빠진 한 문장도 채워넣었다). 지난주 관심도서 가운데 스펜서 웰스의 <판도라의 씨앗>(을유문화사, 2012)에 대해 적었다(지면에는 '스티븐 웰스'라고 저자명이 잘못 나갔다). '농업 문명의 불편한 진실'이 부제로 신석기 혁명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책이었다. 저자의 책으론 <최초의 인간>(사이언스북스, 2007),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말글빛냄, 2007)가 더 번역돼 있다. <최초의 인간>은 <판도라의 씨앗>에 원제에 따라 <인류의 여정>이라고 표기돼 있다.  

 

 

 

주간경향(12. 07. 03) 농업혁명이 가져다준 희망과 불행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저마다 해로운 것을 하나씩 넣은 상자를 판도라에게 주면서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판도라는 결국 뚜껑을 열어보게 되고 전염병을 포함해 온갖 해로운 것들이 상자 밖으로 뛰쳐나온다. 상자 안에는 단 한 가지 좋은 것이 남는데, 바로 희망이다. 요컨대 온갖 불행과 고통으로 점철돼 있지만 동시에 희망을 놓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인류학자 스티븐 웰스의 <판도라의 씨앗>(을유문화사)은 물론 제목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패러디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상자’가 아니라 ‘씨앗’이었다. 그것도 비유적 의미의 씨앗이 아니라 그냥 씨앗. 인류의 역사 어느 시점에서 들판에 씨앗을 파종한 최초의 인간이 있었다. 아마도 여자였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판도라’란 이름으로 불러도 좋겠다. 그렇게 들판에 뿌린 씨앗에서 열매, 곧 곡물을 수확하게 되자 인류사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농업이 시작됐고, ‘신석기혁명’으로도 일컬어지는 이 전환은 전시대의 수렵채집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비가역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저자는 아예 지난 5만 년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큰 혁명이라고까지 평가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한 것은 약 20만 년 전이다. 하지만 약 8만년 전까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종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격감하여 7만년 전쯤에는 2천 명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말 그대로 멸종 위기에 직면했던 인류는 6만년 쯤 전에 변곡점을 거치며 세계 인구는 다시 증가하고 4만5천 년까지 모든 대륙으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록적인 변화는 1만 년 전에 일어나며 오늘날 70억에 이르기까지 세계 인구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그 발단이 바로 농업의 시작이었다.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집인들이 자신의 식량을 찾는 방식에 의존했다면 농경인들은 그 식량을 스스로 창조했다. 그래서 혁명이다. 하지만 이 혁명적 변화는 판도라의 상자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지표상으로도 그렇다. 구석기 시대 수렵채집인 남성의 평균수명이 35.4세, 여성은 30.0세였는데 반해서 식석기 말 남녀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33.1세, 여자가 29.2세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구석기 시대 남성의 키가 거의 177cm였던데 반해서 식석기 말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1cm이다. 사람들은 더 일찍 죽었을 뿐 아니라 더 많이 병들어 죽었다. 농업으로 인해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농경 생활은 사람들을 병약하게 만들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농업 문명으로의 이행은 진화적 압력이었다. 준유목 상태의 식량수집 생활은 환경에 너무 예속돼 있어서 자식을 많이 낳을 수가 없었고 또 인구가 늘어나면 두 집단으로 나뉘어야 했다. 반면에 농업은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기후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판도라의 씨앗’은 처음에 전혀 예기치 않은 식량증가와 인구증가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많은 부작용과 재앙 또한 불러들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현대 인류를 괴롭히는 거의 모든 주요 질병들이 주로 구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과 신석기시대 이후에 우리가 만들어온 문명 사이의 불일치에 근거하고 있다. 높은 인구밀도와 엄청난 규모의 가축, 높은 이동성이 말라리아와 독감, 에이즈, 당뇨병이 창궐하는 조건이다. 심지어 각종 정신질환조차도 인구과잉과 지리적 제한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기인하는데, 이 또한 농업으로의 이행이 가져온 결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농업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생산과 소출, 개발과 진보라는 ‘농업의 뮈토스’ 대신에 욕심을 줄이라는 ‘수렵채집인의 뮈토스’를 도덕적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왜냐하면 지구 자원을 맹렬하게 착취해온 농업의 뮈토스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희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탐욕을 버려라!

12. 06. 27.

 

 

P.S. '신석기혁명'이란 말을 만들어낸 저명한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의 책을 겸하여 읽어볼 수 있겠다. <인류사의 사건들>(한길사, 2011)과 <고든 차일드의 사회고고학>(사회평론, 2009)이 번역돼 있다. 최근에 나온 책으론 브라이언 페이건의 <크로마뇽>(더숲, 2012)이 같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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