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80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분량상 기사에서 빠진 한 문장을 채워놓고 비문 하나를 바로잡았다). 담비사 모요의 <죽은 원조>(알마, 2012)가 지난주에 고른 책이었다. 지난번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 리뷰까지 이번 서평집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현암사, 2012)에 들어갔으니까 이 리뷰부터는 다음 서평집에 포함되겠다(2년후쯤?). 담비사 모요는 하버드대학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제자로 <미국이 파산하는 날>(중앙북스, 2011)을 통해 먼저 소개된 바 있다. 퍼거슨은 책의 추천사를 쓰고 있기도 하다.

 

 

 

주간경향(02. 06. 19) 아프리카의 빈곤을 부추긴 원조정책

 

1985년 7월 13일 전세계 15억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라이드 에이드(Live Aid)’ 콘서트가 개최됐다. 아일랜드 가수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해 기획한 자선공연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도 그 시청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여느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팝음악을 즐겨듣던 10대였는지라 쟁쟁한 팝스타들이 출연했던 콘서트 놓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선공연이라는 명분도 훌륭하지 않은가. 하지만 선의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잠비아 출신의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의 <죽은 원조>(알마)는 그 ‘라이브 에이드’의 이면에 대해서, 원조의 어두운 진실에 대해서 폭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책의 원제는 ‘데드 에이드(Dead Aid)’. 물론 ‘라이브 에이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역설적이지만 저자는 ‘살아있는 원조’의 대안으로 ‘죽은 원조’를 제시한다. 원조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원조를 없애는 것이 ‘죽은 원조’ 전략이다. 왜 원조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원조에 중독된 아프리카의 현실이 마약 중독자의 처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원조에서 벗어나는 일이 당장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지만 원조 의존적인 아프리카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대보다 낮아져 있고, 하루 1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체 7억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다.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전세계에서 빈민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다. 평균수명은 세계 최저이며 문맹률은 가장 높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아프리카대륙의 50% 가량이 비민주적 체제하에 놓여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프리카의 자연적 조건 탓인가? 아니면, 아프리카인들이 특별히 무능하고 그 지도자들이 선천적으로 더 타락하기 쉬운 때문인가? 저자는 의외의 답을 제시한다. 모두가 원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각 정부에 차관이나 증여의 형태로 대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원조다. 그런데 어째서 이 원조가 아프리카의 발전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되었나? 발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 경제의 재건을 위해 원조금을 제공한 마셜플랜이었다. 마셜플랜의 성공이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도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고, 아프리카가 최적의 후보지였다. 냉전체제하에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고수하려는 패권국가들의 대결의식도 원조 경쟁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런 원조가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이었다면?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1970년대 이후 3000억 달러 이상의 원조금이 아프리카대륙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인력 개발에서 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저자는 특히 원조가 권력자들의 부패를 가장 많이 ‘원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해외 원조의 유입은 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재정 의존도를 낮추기 때문에 중산층과 시민사회를 약화시킨다. 그리고 원조 재화를 획득하기 위한 분쟁을 촉발함으로써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심지어는 내전의 잠재적 원인을 제공한다. 그러니 모든 원조가 실패작은 아니었지만, 저자가 보기에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는 분명 실패작이다. 애초에 전혀 다른 조건과 환경에 놓인 아프리카대륙 국가들에게 마셜플랜과 같은 모델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서방식 민주주의가 아프리카 경제의 구제책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에 불과하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의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간과한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사례 외에도 피노체트의 칠레와 후지모리의 페루는 민주주의 없이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곧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지만 거꾸로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는 원조로부터의 출구 전략이 절실하다. 라이브 에이드의 전자기타 소리보다 더 강하게 귓전을 때리는 “원조에 반대한다!”는 절규를 들으며 아프리카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12. 06. 12.

 

P.S. 마감에 쫓겨 급하게 쓰는 와중에 번역도 한 대목을 확인하느라 원고가 더 지체됐었다. 서두에서 저자가 오늘날 아프리카 현황에 대해 정리해주는 곳이다.  

"하루에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350만 명이 넘는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전 세계에서 빈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전 세계 빈민의 약 50퍼센트가 이곳에 몰려 있다."(30쪽)

뭔가 문제인가? '350만 명'이란 숫자다. 너무 적은 숫자여서 아마존에서 원문을 확인해보니 'over half of the 700 million'을  그렇게 잘못 옮긴 거였다. 7억의 절반 이상이니까 '350만 명'이 아니라 '3억 5천만 명' 이상이어야 한다.

 

 

 

한편, 책을 읽은 뒤에 그 여파로 주문한 책은 중국의 아프리카 공략을 다룬 <차이나프리카>(에코리브르, 2009)와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후마니타스, 2008), <지속가능한 민주주의>(한울, 2001), <민주주의와 시장>(한울, 2010) 등 아담 쉐보르스키의 민주주의에 관한 책들이다(<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구입했던 듯싶은데 소재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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