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로쟈의 콜렉션' 페이퍼를 적다가 인터넷이 불안정해 날려버렸다. 그만두려다 잠시 기분전환을 하고 다시 적는다. 할일이 많은 탓에 계획보다는 간단히 마무리해야겠다.

 

 

 

빌미가 된 책은 장-뤽 낭시의 <코르푸스>(문학과지성사, 2012)와 프랑코 베라르디의 <노동하는 영혼>(갈무리, 2012). 각각 프랑스 철학자와 이탈리아 맑스주의 이론가의 책이다. 낭시의 책은 국내에 여럿 소개됐지만, 대부분 공저이고 단독 저작은 <무위의 공동체>(인간사랑, 2010)에 이어 두번째이다. 역자는 <숭고에 대하여>(문학과지성사, 2005)를 옮긴 김예령 박사로 불문학 전공자이다. <코르푸스>는 제목과 부제 '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가 말해주듯 '몸'을 주제로 한 책이다. "프랑스 철학계의 거장 장-뤽 낭시의 몸에 관한 사유"라는 문구가 뒷표지에 적혀 있다.

 

 

 

데리다의 제자로도 유명한 낭시는 영화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는데(언젠가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듯싶다), 옴니버스 영화인 <텐 미니츠 첼로>에 클레르 드니의 '낭시를 향해서'가 그에게 바쳐진 영화다. '기차여행 그리고 10분의 철학적 대화'가 이 단편영화의 내용이다.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영화는 유튜브에도 떠 있다. 다만 불어 대사에 스페인어 자막이다).

 

철학자 장 뤽 낭시와 그의 학생 중 한 사람인 안나가 기차여행을 하며 서로 나누는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영화이다. 낭시는 '침입자'라는 단어로 이민자들이나 타자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안과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인종융합에 관한 미국적 개념인 '도가니'가 차이를 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하며 더불어 이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길게 이어진 대화가 끝난 후 그들의 자리에 한 흑인이 들어와 조용히 묻는다. "언제 도착하죠?"

 

 

<코르푸스>보다 먼저 뒤적인 책이 <노동하는 영혼>인데,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취지는 "이 책에서 나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 시대의 자본주의적 착취의 새로운 형태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조정환의 <인지자본주의>(갈무리, 2011)와 통한다. '아우또노미아 총서'의 한권이면서 동시에 '인지자본주의'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됐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착취의 조건과 코뮤니즘 해방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우리 시대의 필독서!"란 카피가 책의 요지를 잘 집약하고 있다.  

 

 

 

저자 프랑코 베라르디(비포)는 펠릭스 가타리와 같이 활동한 경력이 있지만 낭시와도 안면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서문을 쓴 제이슨 스미스는 낭시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학자. 낭시의 <헤겔> 영역자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자크 랑시에르에 관한 공동 논문집 편집에도 관여했다. 최근에는 필립 암스트롱과 함께 낭시와의 긴 인터뷰집 <정치적인 것과 그 너머>(2011)를 출간했다고. 불어본이어서 욕심을 버렸지만 다른 책들을 모두 주문했다(낭시의 <헤겔>은 갖고 있는 책이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낭시와 비포 사이에 스미스가 있는 형국이다.

 

 

낭시가 공저자로 참여하거나 낭시의 글이 포함된 나머지 책은 <문자라는 증서>(문학과지성사, 2011),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난장, 2010),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문학과지성사, 2005)가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도래하진 않은 철학자이지만, 존재감은 서서히 느끼게 해준다...

 

12. 05. 13.

 

 

 

P.S. <노동하는 영혼>에 부친 제이슨 스미스의 서문 제목이 '파업과 영혼'이다. 덕분에 '영혼'에 대한 관심이 촉발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궁리, 2001)를 다시 주문했다(소재불명이어서). 같이 참고할 책은 이정우의 <영혼론 입문>(살림, 2003)과 장영란의 <영혼의 역사>(글항아리, 20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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