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06호)에서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가정의 달이어서 주제도 '아이와 가족'으로 잡혔다.

 

 

 

책&(12년 05월호) 아이와 가족

 

메이데이로 시작하지만 한국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안녕한가?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갈파한 이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다.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행복한 가정의 모습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천차만별이어서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뜻이겠다. 이달에는 그 ‘가정’을 다룬 책들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나홀로 가구’, 곧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부모가 한두 명의 자녀를 둔 핵가족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흔한 가정 형태다. 따라서 가정의 행복은 많은 경우 부모와 자녀 문제로 귀결된다. 가정의 안녕을 묻기 위해선 먼저 자녀의 안녕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자녀들은 안녕한가? 궁금하다면, 조재연 신부의 <청소년 사전>(마음의숲)부터 손에 들어볼 수 있다. ‘고길동 신부’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청소년들을 상담해온 저자가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사전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왜 ‘사전’이 필요한가? 서로가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선 말이 통해야 하는데, 각기 다른 뜻의 말을 쓴다면 소통이 가능할 리 없다. 가령 ‘부모’는 국어사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돼 있지만 청소년들이 쓰는 의미로는 ‘자식만 욕할 수 있는, 밉고 이해 안 되는 답답한 양반들을 이르는 말’이다. 대다수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표현이 좀 서툴지만 생각보다는 속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또 자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자살 문제는 어떨까.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이 청소년이 보는 ‘학교폭력’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 ‘자살’이다. 학업과 진학, 보모의 이혼, 아이들의 따돌림 등 여러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지 못해서 그들은 자살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간주한다. 당연히 필요한 것은 부모와 학교, 그리고 사회의 따뜻한 관심이다. 잘 알면서도 실천이 어려운 것인가.


문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으론 아동심리학자와 심리상담사, 전직 교사가 함께 쓴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양철북)이 있다. ‘집에서는 안 그러는데...’ 하면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하는 부모라면 필독할 만하다. 일단 관점이 다르다. ‘아이’가 아니라 ‘아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즉 문제는 아이들 개개인이 아니라 아이들의 ‘사회생활’이라는 관점이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은 집단과 개인, 패거리와 서열, 친구가 친구를 떠받쳐주는 진심 어린 우정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이라고 특별한가? 특별하다. 한국에서라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일주일에 최소한 30시간 이상 12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되니 양적으로도 엄청난 시간이다. 이 특별한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없는 아이들에겐 얼마나 길고 힘들게 느껴질지 가늠해보아야 한다.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지난 1999년에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소수 ‘미친’ 아이들이 저지른 우발적인 사고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들은 이 ‘사회적 잔인성’(학교폭력)에 맞서기 위한 프로그램은, 폭력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폭력을 막기 위해 나서서 무언가를 할 생각은 하지 않는 ‘방관자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도덕적인 학교란 도덕적인 학교가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학교입니다”란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아이들의 사회생활과 학교폭력의 원인에 대해 주목했다면 그 실상에 대해서도 눈길을 돌려볼 필요가 있겠다. 캐나다 토론토 지역 청소년 아홉 명이 직접 겪은 폭력의 경험을 들려주는 <폭력은 침묵 속에 전염된다>(아일랜드)는 데이비드 월시의 <10대들의 사생활>(시공사)을 보완해줄 만한 사례집이다. 마약 복용 등의 경험은 한국 청소년들과 거리가 있지만, 캐나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아주 생생하다. 책의 엮은이는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폭력은 침묵 속에 전염된다. 그리고 모두가 저항할 때 멈춘다.”


가정의 행복을 묻기 전에 자녀의 안녕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녀 때문에 불행한 가정도 있고, 자녀가 없어서 행복한 가정도 있겠다. 그렇다면 더 근원적인 질문은 ‘왜 굳이 아이를 가져야 하는가’일지도 모른다. <노키드>(이미지박스)의 저자 코린느 마이어 같으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가 있다고까지 주장하는 데 말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 20년 넘게 뼈 빠지게 일하면서 자신의 여가와 친구, 사회적 성공을 희생할 필요가 있는지 묻는다. 반대로 크리스틴 오버롤은 <우리는 왜 아이를 갖는가?>(부글북스)에서 아이를 갖는 일이 키에르케고르식의 두려움과 떨림을 동반하는 ‘신념의 비약’이긴 하지만, 생물학적 부모가 되는 것은 유전적 관계만이 아니라 심리적, 육체적, 지적, 도덕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존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기회이며 도전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행복과는 다른 기준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12.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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