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소식지 책&(405호)에서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미술사'로 관련서 몇권에 대해 적었다.

 

 

 

책&(12년 4월호) 미술사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시인 엘리엇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4월은 나들이하기에 좋은 달이다. 봄꽃이 만발한 고궁이나 미술관이라면 나들이 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나들이에 따로 준비물이 필요할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미술책이라면 발걸음을 한결 더 가볍게 해줄지도 모른다. 어떤 책들이 있을까.


게오르크 슈미트의 <근대회화의 혁명>(창비)은 제목에 주눅들 필요가 없는 책이다. 스위스 바젤미술관의 관장으로 재직했던 저자의 라디오 방송 강연을 옮긴 것으로 10회에 걸쳐서 근대회화에 혁명을 가져온 10명의 화가들을 소개한다. 강연이 1955년에 이루어졌으니까 우리식으로 말하면 ‘구수한’ 이야기이다. 그가 고른 10명의 화가는 오노레 도미에부터 마르크 샤갈까지인데, 각각의 대표작 한편씩을 골라 간결하면서도 명석한 해설을 들려준다.


가령 도미에의 그림을 설명하기 전에 저자는 중세 초기 이후 서양회화의 역사를 네 단계로 구분하여 소개한다. 14세기초까지만 해도 화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기 때문에 원근법도 해부학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14세기초부터 15-16세기로 접어드는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고자 했다. 이때 화가들이 도입한 수단들은 이미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사용한 것을 재발견한 것이어서 ‘르네상스’라고 불린다. 16세기 중반 이후 미술사는 한 번 더 전환을 경험한다. 역시나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긴 했지만 그 현실은 화가가 보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현실이었다. 이에 따라 나타난 것이 색조의 회화이고 대상의 물질성을 대신하는 필촉의 물질성이다.

 

 

이러한 화풍의 마지막에 나타난 화가가 도미에이며 그는 대략 1850년경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단계의 회화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도미에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1850)를 통해서 그가 ‘데포르마시옹’, 곧 형태의 변형이 갖는 미술적·인간적 의미를 파악한 화가였다고 평가한다. 도미에가 열어젖힌 현대 회화의 길은 곧바로 반 고흐와 수많은 다른 화가들에게로 이어지게 된다. 

 


우정아의 <미술, 역사를 만나다>(아트북스)는 회화사 자체의 발전과정이 아니라 회화적 이미지에 담긴 세상의 변화를 읽어주는 책이다. ‘어떻게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그렸는가’에 초점을 맞춘 셈으로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시대부터 19세기말 후기인상주의까지가 이 책에서 다루는 변화의 범위다. 그림들은 자기 시대의 사회상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의 하나로 밀레의 ‘이삭줍기’(1857)를 예로 들어본다. 저자는 이 그림의 배경인 19세기 프랑스에서 이삭줍기가 농촌의 극빈층에게 부농이 베푼 일종의 특권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추수가 끝나고 난 뒤 남은 밀 이삭을 이들이 주워가도록 한 것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곡식 알갱이를 줍는 일은 중노동에 가까웠지만 이마저도 아쉬웠던 것이 당시 농촌의 처참한 현실이었다. 그림 속의 세 여인이 하루 종일 이삭을 줍더라도 겨우 빵 한 덩어리를 만들 수 있을까 말까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말을 탄 보안관이 멀찍이서 이들을 감시하고 있는 게 보인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고된 현실을 ‘이삭줍기’는 보여준다.

 

 


가볍게 시작한 그림과의 만남이 좀더 깊이 있는 만남을 부추긴다면 본격적인 미술사를 손에 들 수도 있겠다. 들고 다니기엔 좀 불편하지만 이 경우 보통 곰브리치나 잰슨의 <서양미술사>가 표준적인 가이드북 역할을 한다. 거기에 특색 있는 미술사 책을 더 얹자면 제임스 홀의 <왼쪽-오른쪽의 서양미술사>(뿌리와이파리)를 빼놓을 수 없다. 제목 그대로 ‘왼쪽-오른쪽’이란 코드로 서양미술사를 다시 들여다본 시도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그건 그림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가령 ‘창세기’에서 이브가 “그 열매를 따먹고, 함께 있던 남편에게도 주어서 그가 그것을 먹었다”고 말할 때, 이브가 어느 손으로 열매를 따먹고 건넨 것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화가는 이브가 아담과 뱀 사이 어디에 서 있고 사과는 어느 손으로 땄는지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문화적 통념에 따라 흔히 ‘오른쪽=선, 왼쪽=악’으로 그려졌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미술사는 ‘왼쪽으로의 선회’라는 중요한 변화를 보여준다. 저자의 문제의식 덕분에 무심코 봐왔던 그림의 왼쪽-오른쪽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듯 색다른 미술사라면 플로리안 하이네의 <거꾸로 그린 그림>(예경)도 뒤처지지 않는다.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을 다룬 책으로 ‘최초’라는 키워드로 읽어낸 미술사이다. 책의 마지막 ‘최초’는 ‘최초로 거꾸로 그린 그림’인데,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머리 위의 나무’(1969)가 미술사의 기록이다. 그럼 거꾸로 보아야 하느냐고? 그건 아니다. “그는 물체를 거꾸로 그려 주제의 의미가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감상자의 관심이 회화적인 결과에만 집중되도록 했다.” 또 다른 ‘최초’가 더 남아있다면 미술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12.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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