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지난달 <햄릿>에 이어서 이달에 읽은 건 <돈키호테>다. 고전이 으레 그렇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다.

 

 

 

한겨레(12. 04. 14) 눈에 콩깍지 씐 돈키호테, 우리 안에 산다

 

방랑기사 돈키호테의 대단한 모험담을 그린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명성은 세계문학사에서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정작 그의 생애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아버지가 당시엔 이발사보다 나을 게 별로 없던 외과의사인데다가 청각장애인이어서 집안은 평생 가난을 면치 못했고 세르반테스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을 걸로 추정된다.

청년시절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의 연합함대가 오스만 제국을 물리친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바른손의 명예를 앙양하기 위해’ 왼손의 자유를 잃었다. 불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아 귀국길에 오르다 터키 해적에게 납치돼 5년간 북아프리카에서 포로생활을 한다.

노예와 같은 생활 속에서도 이 불굴의 상이용사는 여러 차례 탈출을 꾀하고 반란을 주동하여 해적들까지도 경탄하게 만들었다. 결국 어렵게 몸값을 지급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오지만 조국은 그를 대우해주지 않았다. 허다한 ‘군인 출신 실업자’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고, 세르반테스는 창작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작가의 길도 순탄치는 않아서 그는 예순이 다 돼서야 <돈키호테>로 이름을 얻는다.

돈키호테는 누구인가? 우리에겐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괴짜’를 가리키는 별명이 됐지만 그는 일단 독서광이다. 행동가형 인물에겐 어울리지 않은 전력처럼 보이지만 여하튼 그는 사색가형의 대명사 햄릿보다도 더 많은 책을 읽었을지 모른다.

그는 경작지를 다 팔아치워가며 자신의 서가를 기사소설들로 채우고 밤낮으로 읽었다. 그 결과 마침내는 정신이상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직접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명예를 세우기 위해” 방랑기사의 길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사라진 전설의 기사들을 모델로 하여 다시 복원하고자 한 기사도란 무엇인가. “처녀들의 순결을 지키고, 과부들을 보호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나 고아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그는 ‘네 것, 내 것’이란 구별이 없이 모두가 행복했던 ‘황금시대’를 다시 꿈꾼다. 그는 시대착오적인 미치광이인가?

방랑기사로 나선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돌진하고 시골 이발사의 세숫대야를 전설적인 맘브리노의 투구로 오인한다. ‘불쌍한 몰골의 기사’ 주인의 착각이 너무 심한 듯하여 하인 산초조차도 핀잔을 던지자 돈키호테는 이렇게 나무란다. “자네에게 세숫대야로 보이는 그것이 나에게는 맘브리노 투구로 보이는 것이고, 또 딴 사람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

물론 돈키호테는 맘브리노 투구를 마법사가 술법을 부려 다른 사람에게는 세숫대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시각차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돈키호테의 광기는 특이하다.

그는 자신이 늙은 시골귀족이라는 걸 알지만 동시에 ‘라만차의 돈키호테’라고도 생각한다. 부스럼투성이에다 말라비틀어진 말도 ‘로시난테’가 되고, 이웃마을의 농사꾼 처녀는 그가 사랑하는 귀부인 ‘둘시네아’가 된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 눈에 콩깍지가 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객관적 진실’이 얼마나 텅 빈 것이고 말라비틀어진 것인지 알 것이다.

진실은 풍차와 거인 사이에, 맘브리노 투구와 세숫대야 사이에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돈키호테의 광기는 유난스럽지 않다. 세르반테스의 파란만장 편력을 닮은 돈키호테의 모험담은 숭고한 이상을 위해 돌진하는 모든 이들의 모험담이기도 하다.

12. 04. 13.

 

 

 

P.S. 세르반테스에 관한 전기가 국내에 소개돼 있지 않은 건 유감스러운데, 하는 수없이 최근에 영어본이라도 구입했다. 도널드 맥크로리의 <평범하지 않은 인간: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생애와 시대>다. 작품 읽기는 나보코프의 <돈키호테 강의>를 참고하고 있는데, 이 또한 번역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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