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64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강양구, 박성민의 <정치의 몰락>(민음사, 2012)이 글감이다. 곧 다가올 선거철을 맞아 베테랑 정치 컨설턴트가 보는 '정치판'이 어떤 것인지 귀동냥을 해봐도 좋겠다. 개인적으론 백낙청 교수의 <2013년체제 만들기>(창비, 2012) 연장선상에서 읽은 책인데, 박성민의 '75퍼센트 민주주의'는 분류하자면 '2012년체제 만들기'에 해당한다.

 

 

 

주간경향(12. 02. 22) ‘75% 민주주의’로의 변화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묻고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이 답한 <정치의 몰락>은 비슷한 형식의 책 두 권을 먼저 생각나게 한다.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한 <진보집권플랜>(오마이북)과 지승호가 묻고 엮은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푸른숲)가 그것이다. 앞에 나온 두 권이 뚜렷하게 진보집권과 진보정치운동을 지향한다면 <정치의 몰락>은 좀 더 객관적으로 2012년 한국정치를 진단하고 전망한다. 한국정치,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치의 몰락’이라는 제목과 ‘누가 정치를 죽였는가?’라고 묻는 서문은 사실 책의 핵심을 잘 짚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저자가 나눈 대화의 얼개는 오히려 ‘보수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이란 부제에서 더 잘 드러난다. 즉 ‘종언과 탄생’이 ‘한국의 대표 정치 컨설턴트’가 지금의 한국정치를 보는 프레임이다. 하지만 그 종언과 탄생 사이에는 약간의 간극이 있다.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시대가 바로 도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조금 희망적으로 보자면 지금은 새로운 시대의 ‘전야’이다. 지난해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된 것은 어쩌면 한국정치사의 ‘변곡점’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지난 60여년간 유지되어온 보수 우위의 시대가 끝나고 보수와 진보가 전략적으로 대치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 물론 부정적으로 보자면 ‘진정한 어둠’을 아직 남겨놓은 ‘시대의 마지막 밤’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갈래 길의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이 ‘우리’는 세대적 의의를 갖는 우리다.

 

박성민은 한국 현대사의 60년을 20년 단위의 시대적 흐름으로 분할하여 간추린다. 먼저 1950~1960년대는 ‘생존에 대한 회의’가 지배한 시대였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이산가족이 됐다. 살아남는 것만이 삶의 목표가 된 ‘실존의 시대’였기에 모두가 의지할 곳을 찾았고, 한국 교회는 유례없이 성장했다.

 

1970~1980년대는 ‘국가권력에 대한 회의’가 지배한 시대였다. 독재권력에 대한 항거가 결국엔 1987년 6월항쟁을 끌어낸 ‘민주의 시대’였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시작된 1990~2000년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연대였고, ‘진보에 대한 회의’가 시대정신를 잠식한 ‘자유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한국사회의 주도권은 ‘안보 보수’에서 ‘시장 보수’로 넘어갔고, 그 정점이 2007년 CEO 출신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이다. 그러나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시장에 대한 회의’를 촉발했다. ‘정의’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했고, 정부까지 나서서 ‘공정사회’를 국정지표로 내세우게 됐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공화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도달했다. 혼자만의 자유와 부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연대와 공동체의 안녕에도 관심을 갖게 된 시대다.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정신에 걸맞은 정치적 주체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새로운 주체의 탄생과 나란히 가야 하는 것은 정치제도의 변화다. 정치의 본질이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고, 또 “촛불보다는 투표가 힘이 세고, 투표보다는 제도가 힘이 세다”고 믿는 저자는 갈등을 조정하는 가장 유력한 방식이 대화와 타협이라고 본다. 그런데 51%만을 확보하면 모든 것을 장악하는 다수결 방식은 한국사회에서 동의와 승복을 얻어내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75% 민주주의’이다.

 

한국사회는 적어도 75%가 동의하는 일에는 승복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에 정치제도 또한 그런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탄생하게끔 하고 선거제를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구제로 바꾸는 것이 75% 민주주의의 실현방안이다. 또한 국회의원의 임기도 아예 2년으로 줄여서 선거를 더 자주 치르는 것이 한국정치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베테랑 정치 컨설턴트가 새로운 권력의 탄생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가역적(非可逆的) 시스템으로서 새로운 제도의 창출이다.

 

12. 02. 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