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이번에 다룬 건 <시경>이다. 번역서와 관련서를 관심을 갖고 모으고 있는데 분량이 분량인지라 천천히 읽을 작정이다. 관련서 가운데는 정약용의 <역주 시경강의>(사암, 2008)도 있다. 5권짜리인데, 두껍고 비싼 책이다. 결정적으론 2권만 품절된 상태다(그래서 보류중이다). 수집가에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책이니 아쉽다... 

 

 

 

한겨레(12. 02. 18) 시경이 고답적이란 건 편견이었네

 

올해의 독서목표 중 하나는 <시경>을 읽는 것이다. 중문학은 아닐지언정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적잖은 시집을 읽었지만 <시경>은 한번도 읽어볼 생각을 못했다. 돌이켜 보면 좀 기이한 노릇인데, 아마도 ‘경’(經)이란 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삼경’으로 묶이는 <서경>과 <역경> 또한 손에 들지 않았던 걸 보아도 그렇다. ‘사서삼경’이란 말이 풍기는 고답적 엄숙주의나 권위주의를 대학 새내기 시절엔 좋아하지 않았다.

<시경>이 그렇게 뻣뻣한 책이 아니라 ‘노래모음집’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좀 뒤늦게 알았다. <시경>에 대한 인상이 조금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중국시라면 <당시>만 하겠는가’란 생각으로 버텼다. 신영복의 <강의>에서도 ‘동양고전의 입문’이라 할 만큼 중요한 것이 <시경>이라고 소개됐지만 ‘고전이라면 <논어>에 비하겠는가’라고 이유를 댔다. 그러던 차에 뜻밖에도 <시경>에 대한 관심이 샘솟은 것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으면서다. 서양 최고(最古)의 서사시를 읽은 참에 세계 최고(最古)의 시도 읽어봐야겠다는 의욕을 갖게 돼서다. 중국 주나라 초기인 기원전 12세기 말부터 춘추시대 중엽인 기원 6세기까지 약 600년간의 노래를 300여편 모은 책이니 생각하면 경이로운 ‘문화유산’이다. 우리에겐 가장 오래된 서정시로 전하는 유리왕의 ‘황조가’가 기원전 17년에 지어진 것과 비교해보아도 그렇다.

그렇다고 오래된 시라는 의의만 갖는 건 아니다. 가령 <시경>의 첫 시 ‘관저’(關雎)에 나오는 ‘요조숙녀’란 말은 아직도 친숙하지 않은가. ‘관저’는 시의 첫 구절 ‘관관저구’(關關雎鳩)의 준말로 ‘저구’는 ‘징경이’ 혹은 ‘물수리’를 가리키고, ‘관관’은 그 암수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 곧 의성어이다. 실제로 물수리의 울음소리가 어떤지 모르기에 번역본마다 ‘구욱구욱’ ‘끼룩기룩’ ‘까옥가옥’ 등으로 옮겼다. 그렇게 서로 ‘짝을 찾는 물수리’에 자신의 처지를 견준 것이 이 시의 기본 발상법이다. 5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요조숙녀란 말은 네 번이나 등장하며,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가 첫 용례다. 여러 번역본에서 이 구절은 “아리따운 고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배필일세”(김학주), “그윽하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는 일편단심 기다리는 이 몸의 배필”(이기동) “아리따운 아가씨는 사나이의 좋은 배필”(기세춘·신영복), “하늘하늘 그윽한 저 새악시 멋진 사내의 좋은 배필”(김용옥) 등으로 옮겨졌다. ‘군자’란 말이 쓰이긴 했지만 공자 이전에는 그냥 ‘사내’를 뜻했다고 한다. 군자를 주나라 문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식의 전통적인 해석은 후대 유학자들이 왜곡한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평가다. 원래는 그냥 배필을 찾는 사내의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 시였다는 것이다.

시의 갈래로 보자면 ‘관저’는 <시경>의 많은 시와 마찬가지로 서정시이자 연애시이다. 하지만 미혼의 남자가 여자를 연모하는 모습을 그린 시로는 이채로운데, 이런 사랑의 표현이 뒷시대에는 계승되지 않았다고 한다.

미혼남녀의 사랑을 읊은 시는 줄어든 반면에 부부의 정을 노래한 시는 계속 이어졌는데, 이 역시 유학이 관학으로 자리잡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장징의 <사랑의 중국문명사>에 따르면, ‘연애’라는 단어 자체가 송나라 때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이때도 연애는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심과 배려를 뜻하는 말이었다. 현대 중국어에서 남녀간의 사랑을 뜻하는 ‘롄아이’(戀愛)는 일본에서 역수입된 단어라고 하니 ‘요조숙녀’에 대한 그리움은 가장 오래된 그리움이면서 현대적인 그리움이기도 하다.

 

12. 02. 17.

 

 

 

P.S. 김용옥의 '관저' 번역과 풀이는 <논어한글역주2>(통나무, 2008)에 나온다. 장징의 책은 <사랑의 중국문명사>(이학사, 2004) 외 <근대 중국과 연애의 발견>(소나무, 2007)이 더 번역돼 있다.

 

 

그밖에 고형렬 시인이 쓴 <아주 오래된 시와 사랑 이야기>(보림, 2005)는 청소년을 위한 시경 풀이이고, 유병례의 <톡톡 시경 본색>(문, 2011)은 대학생을 위한 책인 듯싶은데 평이한 수준이다. 한흥섭의 <공자, 불륜을 노래하다>(사문난적, 2011)도 '물수리' 편부터 시작해 <시경>에서 49편을 골라 풀이하고 있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이 책 역시 내용은 평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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