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낮에 몇가지 아이템을 두고 고심하다가 영화 <공룡시대> 이야기를 단서로 삼아서 자유주의적 문화주의에 대해 적었다. 아이가 내일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간다는 말에 엊그제 한겨레문화센터의 지젝 강의에서 언급한 내용이 떠올라서다.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자음과모음, 2011)에 <공룡시대>의 이데올로기적 내용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경향신문(12. 02. 17) [문화와 세상]수상한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종업식을 하고 봄방학에 들어간 초등학생 딸아이의 첫 일정이 3D 애니메이션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을 보러가는 거라고 한다. 토종 애니메이션으로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이 영화는 교육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만족시킨 작품이라니 무얼 더 바라겠는가.

 



물론 어떤 교육성인지 따지고 들면 문제는 조금 복잡해질 수도 있다. 이젠 옛날 영화라고 해야겠지만 스필버그 감독이 기획한 <공룡시대>(1988) 같은 경우가 그렇다. 어미를 잃은 새끼 공룡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여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한데 이 영화를 두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패권주의적인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좀 거창한가? 패권주의적이란 말은 알다시피 지배적이란 뜻이니 제쳐놓으면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주의다. 그게 뭐가 나쁘다는 말일까?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가 반대하는 것은 힘과 덩치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태도다. <공룡시대>에서는 덩치 크고 못된 공룡들이 부르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들어 있다. “덩치가 크면 모두 밀어버릴 수 있지. 덩치가 크면 세상 살기가 편해.” 덩치가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규칙을 어겨도 되고, 작고 무력한 동물들을 맘대로 짓밟을 수도 있다는 게 큰 공룡들의 생각이다. 미국 사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선 떠올리게 되는 건 유사 공룡사회로서 한국사회다. 갖은 권력 남용과 부정 의혹 등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피해가는 권력자들과 자잘한 사업에까지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덩치만 불려가는 재벌기업들의 행보는 우리가 아직 ‘선사시대의 땅’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공룡시대>의 원제는 바로 ‘선사시대의 땅’(The land before time)이다.

 

 

물론 <공룡시대>의 메시지는 패권주의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큰 공룡들에게 시달리는 작은 공룡들은 큰 공룡들의 노래에 이렇게 답한다. “세상을 이루려면 모든 종류가 다 필요해. 키 작은 놈, 키 큰 놈, 덩치 큰 놈, 덩치 작은 놈.” 한마디로 관용적 포용주의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좀 더 재미있는 삶을 위해서는 똑똑한 놈도 필요하고 멍청한 놈도 필요하고 하여간 모든 종류가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소위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다. 서로 다르지만 그런 차이 속에서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문제는 이런 믿음이 사회적 적대관계를 배제하거나 은폐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다. 이 이데올로기는 ‘수직적 적대’를 ‘수평적 차이’로 대체한다. 수직적 적대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이 있는 현실을 가리킨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있고 이 관계가 고착적일 때, 그것을 수직적 적대관계라고 부른다.

<공룡시대>에서 선량한 공룡들은 그런 적대를 수평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차이 정도로 순화시킨다. 하지만 과연 잡아먹는 공룡과 잡아먹히는 공룡 간의 차이가 점이 있는 공룡과 없는 공룡 간의 차이 정도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일까. 고문 경찰과 고문 피해자가 다양성을 예찬하며 서로 사이좋게 합창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도 되는 것일까.

우리 ‘선량한’ 공룡들의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는 그런 점에서 미심쩍다. 패권주의에 맞서는 듯싶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포용하고 계속 보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포용적 태도에 앞서야 하는 것은 ‘못된 종류들’에 대한 불관용이다. 상생의 전제조건은 “좋은 게 좋은 거지”가 아니라 과오와 기만에 대한 냉정한 심판과 척결이다. ‘한반도의 공룡시대’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하다.

12.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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