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03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주제는 '식량전쟁'으로 골랐다. 새삼 알게 된 거지만, 영어 단어 'food'는 '식량' '식품' '음식'으로 모두 번역될 수 있다. 먹거리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더 예민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지면에 나간 글은 오탈자가 걸러지지 않아 교정해서 옮겨놓는다. 

 

 

 

책&(12년 2월호) 식량전쟁

 

“세계의 식량위기는 21세기의 정치 문제이자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도전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빌프리트 봄머트가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알마, 2011)에서 내리는 결론이다. 하지만 이 결론은 식량문제를 다룬 대부분의 책에서 서론으로 옮겨놓아도 무방하다. 사람은 모두 먹어야 생존할 수 있기에 누구도 식량과 식품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그 식량문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 인구, 기아, 기후, 그리고 바이오연료 등이 복잡하게 얽힌 세계 식량문제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해결책은 무엇인가.

 

 


‘배부른 제국과 굶주리는 세계’로 양분된 오늘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리즈 파텔의 <식량전쟁>(영림카디널, 2008)을 출발점으로 삼아보자. 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작물 수확량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인구 열 명 가운데 한명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문제적 현실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과체중 인구(10억 명)가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8억 명)를 앞질렀지만 절대 빈곤층은 줄지 않고 있다. 비만과 기아는 동일한 문제의 양면일까. “모든 나라마다 비만과 기아, 가난과 부의 편중이라는 대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모순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 식품산업의 구조이다. 커피를 예로 들자면 커피 재배업자와 소비자는 넘쳐나지만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가공업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즉 모래시계 구조이다. 다수의 생산자가 도시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하지 않고 소수의 식품 가공업체에 팔아넘기기에 작물의 산지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이익을 보는 건 소비자가 아니라 ‘중개상’이다. 가령 멕시코의 주식은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토르티아라는 빵인데, 옥수수 가력이 하락한다고 해서 토르티아 가격도 덩달아 떨어지진 않는다. 가격 폭락으로 옥수수 농가는 망해가도 토르티아 값은 오히려 더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토르티아시장의 가공업체가 김사(GIMSA)와 민사(MINSA)라는 다국적 기업 두 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멕시코정부는 이들 독점업체에 보조금까지 지급하면서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맺어진 북미자유무역협정은 멕시코의 농업경제를 파탄직전까지 몰고 가 오히려 미국 측에서 자유무역의 부정적 여파를 우려할 정도였다. 멕시코의 경우는 세계 식량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표준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식량전쟁>에는 지난 2003년 세계무역기구 장관급 회담이 개최된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가 농민을 죽인다!”라고 외치며 자살한 농민운동가 이경해 씨의 사례도 나온다. 한농련(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이었던 이 씨는 유망한 한우 사육농이었지만 한국정부가 호주와 쇠고기 수출 협정을 체결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값싼 호주산 쇠고기 수입에 대비해 정부가 권장한 것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소 사육마리 수를 늘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쇠고기 값 하락은 지속됐다. 정부의 조언을 따랐던 그는 결국 대출금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신세가 됐고 절망 끝에 죽음으로 항의를 표시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전 세계 농민 수만 명이 “우리는 모두 이경해다!”를 외쳤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농민들의 현실은 과연 달라졌을까. 

 

 


미국 저널리스트 폴 로버츠의 <식량의 종말>(민음사, 2010)은 위기와 좌절이 농민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전 세계적 식량 공급망과 현대 식품 시스템을 통해서 도시 소비자들은 곡물, 고기, 과일, 채소 등을 어느 때보나 더 많이, 그리고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도 한쪽에서는 ‘식품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고, 기아를 모면한 나머지 인류는 현대식 식단이 낳은 부정적인 결과로서 비만과 심장병과 당뇨와 싸우고 있다. 게다가 대형 가축 사육시설과 집약적 농업은 점차 자연 시스템의 생산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처럼 상황은 더 나빠져 가고 있는데, 21세기 중반이면 거의 100억에 달할 인구를 과연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새로운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까?


다시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로 돌아오면 저자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물론 대책은 강구하고 있다. 2008년에 불어 닥친 식량위기 이후 국제연합의 반기문 사무총장은 식량문제를 중요한 현안으로 간주해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은행, 국제농업개발기금과 세계식량계획, 세계무역기구 등에 분산돼 있는 전문 인력을 한데 모아 ‘세계식량안보위기대책 하이레벨 태스크포스’까지 꾸렸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한 국가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조정되지 않는 문제를 국제연합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무망한 일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기아에 시달리는 8억 6200만 명의 식량과 생존권 확보에 필요한 비용이 300억 달러라고 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무기 구입에 2000억 달러를 지출하고 1000억 달러어치 식량을 버릴지언정 국제사회가 300억 달러를 마련하는 일은 어렵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

 

12. 02. 10.

 

 

P.S. 식량문제 관련서를 몇권 더 들자면 교과서적인 책으로 패트릭 웨스트호프의 <식량의 경제학>(지식의날개, 2011), <식량전쟁>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월든 벨로의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더숲, 2010), 그리고 최근에 나온 톰 스탠디지의 <식량의 세계사>(웅진지식하우스, 2012) 등을 꼽을 수 있다. '식량전쟁'은 우리가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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