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읽을 만한 책'에 올려놓기도 해서 헤겔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주문한 프레더릭 바이저의 <헤겔>(도서출판b, 2012)은 오늘에야 출고가 된다고 하기에 대신 펼친 건 피터 싱어의 <헤겔>(시공사, 2000)이다. 12년전에 나왔고 지금은 절판된 책. 당시 철학자/사상가들 입문서로 '시공 로고스 총서'가 30권 가량 출간된 바 있는데, 그중 하나다. 원저는 1983년에 나왔다. 무려 30년 전 책이다(싱어는 현재 프린스턴대학의 생명윤리학 석좌교수로 있다).

 

 

그렇다고 그렇게 '올드한' 책만은 아니다. 바로 지난해에 옥스포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오는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하나로 재출간됐기 때문이다(연도를 잘못 봤다. 작년이 아니라 2001년에 출간됐다). 싱어는 이 시리즈의 <마르크스>도 쓰고 있는데, 시리즈판으론 2000년에, 그리고 원래는 1980년에 출간된 책이다. 국내에서도 새 번역본으로 단장하고 출간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미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책들이 한겨레출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그런 분위기를 탈 수도 있겠고.  

 

오래전 기억이지만 지젝을 읽기 전에 읽은 헤겔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하기만 한 철학자여서 싱어의 <헤겔>도 별반 인상적이지 않았다. 어제 배송받은 영어본을 보니 짧은 분량 대비로는 가장 훌륭한 소개서라는 추천사가 붙어 있다. 영어권에서 30년의 세월을 버텨낸 비결이 있을 터이다.

 

머리말의 시작은 이렇다. "19세기나 20세기의 어떠한 철학자도 헤겔만큼 세계에 엉청나게 영향을 준 철학자는 없다. 이렇게 결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는 아마 칼 마르크스일 것이다 - 마르크스 자신은 헤겔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포함해서 19세기 이후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가 헤겔이다. 하지만 그런 '영향'만을 고려하여 헤겔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헤겔의 영향만큼은 헤겔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헤겔 철학이 그 자체로 연구될 만한 가치가 있다.(11쪽)

헤겔 전공자의 번역이긴 하지만 다소 투박한데(헤겔적 번역?) 이 대목의 원문을 보니 이렇게 돼 있다. "Hegel's impact alone makes it important to understand him; but Hegel's philosophy is in any case worth studying for its own sake." 다시 옮긴다면 "헤겔의 영향만으로도 그를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런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헤겔 철학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머리말에서 싱어는 짧은 분량 때문에 불가불 헤겔의 저작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한 양해를 구한 다음에 자신의 헤겔 이해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열거한다. 옥스포드대학 시절의 헤겔 강의를 담당했던 교수들과 헤겔 연구서의 저자들이다. 특별히 네 명의 저자가 쓴 네 권의 저작을 꼽고 있는데, 하나만 빼고 나머지 세 권은 국내에 소개돼 있다. 

 

 

맨먼저, 리처드 노먼의 <헤겔의 현상학>(1976). 이 책은 '리차드 노만'이란 저자명으로 <헤겔의 정신현상학 입문>(한마당, 1984)이라고 번역됐었다. 그리고 이반 졸의 <헤겔 형이상학 입문>(1969).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다. 지금은 영어권에서도 희귀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헤겔>이란 제목을 단 두 권의 책인데, 월터 카우프만의 <헤겔>(1965)과 찰스 테일러의 <헤겔>(1975)이다. 카우프만의 책은 <헤겔>(한길사, 1985)로 나왔었다. 테일러의 두툼한 <헤겔>은 번역되지 않았지만, 대용인 <헤겔과 현대사회>(1979)가 <헤겔철학과 현대의 위기>(서광사, 1988)로 번역돼 있다. 이 세권은 모두 갖고 있고 나대로 들춰보았으니 헤겔에 대해서도 할 만큼은 했다는 생각이 든다.

 

 

 

'헤겔의 시대와 생애'를 첫 장으로 하는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싶지만, 참고문헌에는 아무래도 약간 보충된 게 있다. 대표적인 게 헤겔의 전기에 관해선 테리 핀카드의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을 참고하라는 것. 헤겔의 정치철학과 관련한 참고문헌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책은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중원문화, 2011),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2>(민음사, 1989) 등이다. '헤겔을 읽을 시간'이라고 입을 열었기에 몇마디 더 얹었다...

 

12. 02. 01.

 

 

 

P.S. 저녁나절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프레더릭 바이저의 <헤겔>(도서출판b, 2012)이 배송됐다. 책은 2010년판을 옮긴 것인데 원서에는 2005년 초판에 들어있던 '좀 더 읽을 거리' 대신에 '헤겔 용어 해설'이 실렸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번역본에는 둘다 옮겨졌다. 바이저는 옥스포드에서 찰스 테일러와 이사야 벌린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테일러의 제자답게 가장 훌륭한 헤겔 입문서로 테일러의 <헤겔>(1975)를 꼽고 있다(번역되기엔 너무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바이저 역시 이반 졸의 <헤겔 형이상학 입문>(1969)를 "매우 명확하지만 짧은 입문을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싱어와 달리 카우프만의 <헤겔>(1966)에 대해선 "질이 매우 고르지 못하며 낡았다"고 평가절하한다. 현재 시라큐스대학의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바이저의 책으론 <낭만주의의 명령>(그린비, 2011) 외 <이성의 운명>과 <독일 관념론> 등이 더 있다. 영어권에서는 독일 관념론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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