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때문에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문학동네, 2010)를 읽다가 주문한 책은 칼(카를) 비테 부자가 각각 쓴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베이직북스, 2008)과 <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베이직북스, 2008)이다. 이 부자가 유명해진 건 목사였던 아버지 칼 비테(1748-1831)의 유난스런 교육 때문인데, 조기교육과 영재교육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던 그는 평범한 아들, 심지어 지능이 좀 떨어진다는 아들 칼 비테 주니어(1800-1883)에게 일반적인 학교 교육과는 '다른 교육'을 실시하여 '천재'로 만들었다.

 

 

 

이지성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문고전 독서' 교육이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인데, "그는 태어난 지 15일 된 아들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 두 살 때부터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을 읽어주었고, 여덟 살 때부터는 혼자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 했다."(62쪽) 결과는?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에 기센 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62쪽)

영재교육, 천재교육에 열광하는 부모에겐 단연 돋보이는 커리어이다. 오늘 구입한 책들도 2008년에 초판이 나와서 작년 12월과 8월에 각각 12쇄와 7쇄를 찍고 있다. 가정교육, 자녀교육의 '바이블'이란 문구도 표지에는 박혀 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도 인문고전 교육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거론되고 있고. 그런데 수수께끼가 나온다.

카를 비테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썼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천재로 키우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했던 비테의 저서는 20세기에 하버드대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접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62-3쪽)

 

 

갑자기 사라져버리다니?! 무슨 음모론도 아니고 무슨 얘긴가? <자녀교육법>에는 그런 언급이 없으므로 기무라 큐이치의 <칼 비테 영재교육법>(푸른육아, 2006) 같은 책에나 나오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아들 비테가 1814년에 기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기네스북에 오른 기록이라 한다. 최연소 박사학위자라는 건데,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그런 아들을 키워낸 기록이 그의 <자녀교육법>으로 책갈피 소개로는 1818년에 저술했고, 러시아어 위키백과를 참고하니 1819년에 출간했다. 영어본이 나온 것은 1914년. 하버드대 도서관에서 발견됐다는 게 그 즈음인 모양이다. 그런데, 책갈피의 저자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을 독특한 교육이념과 방법으로 훌륭하게 길러낸 경험을 바탕으로 1818년에 저술한 <칼 비테의 교육>이란 책은 조기교육 이론서로써 지난 200년 동안 영재교육의 '경전'으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

일단 문장이 비문이기에 교정하자면 그는 -> 그가, 이론서로써 ->이론서로서.(<공부의 즐거움>에서도 '조기교육 이론서로'라고 돼 있다. 출판사가 '베이직'이 안돼 있다) 그리고 "지난 200년 동안 영재교육의 '경전'"으로 불려왔다는 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는 사실과 호응하지 않는다. 영어 위키백과를 보면(의외로 굉장히 짧다!) 독일에서 책이 나왔을 때 비난이 쏟아졌고 곧 잊혀졌다고 돼 있다. 그럼에도 '영재교육의 경전'이라면 '잊혀진 경전'이라거나 '오명을 뒤집어쓴 경전'이라고 해야겠다.  

 

 

 

사실 책은 영어판으로도 1914년 이후에는 조용하다가 2008년부터 다시 출간되는 듯싶고, 알라딘에는 뜨지도 않는다. 별로 인지도가 없는 책. 오히려 칼 비테의 가장 유명한 책은 단테 연구서이다. 그러니 '자녀교육의 바이블'이라거나 '가정교육의 바이블'이란 건 다 과장된 문구로 보인다. 이런 게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과장법과는 잘 호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흥미로운 건 역자다. <자녀교육법>의 역자는 약력이 "충북대 중문과를 졸업하였고, 북경 공업대학과 상해 재경대학에서 수학하였다"고 돼 있다. 그리고 <공부의 즐거움>의 역자는 "대구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중국 강소성 소주대학교에서 수학했다."고 돼 있고. 무슨 뜻인가? 책이 독어판을 옮긴 게 아니라 중국어판에서 중역했다는 뜻이다. 영어 위키백과를 보고서야 의문이 풀렸는데, 독일에서는 잊혀졌다는 말에 뒤이어 21세기초 중국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한국어본의 원전도 그래서 오리무중이다. 중국어본의 대본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므로). 법적으로 아이를 하나씩만 키우는 중국의 부모들이 '천재교육'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예일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의 <타이거 마더>도 떠올리게 된다. 우리에겐 전혜성 교수의 교육법이 이에 대응할 만할까.)

 

 

 

그러고 보면 <천재로 키워라>(종이나라, 2007)의 저자가 바로 중국인이고, 이 책의 번역자가 <공부의 즐거움> 번역자이기도 하다. 짐작엔 중국에서 갑자기 뜬 책이 우리에게도 '가정교육이론의 고전'으로 소개된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열광한 독자들이 다시 또 이 책을 찾는 게 아닌가 싶고. 이런 '풍문'과 실제 교육학계에서의 '평가'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비테의 교육법이 소개되려면 자초지종에 대한 정확한 재구성과 함께여야 한다. 그의 교육법의 핵심이 인문고전 읽히기로 돼 있지만 어쩌면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기에. 그는 항상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카를, 넌 최고란다. 아빠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단다. 그러니 힘을 내렴."  

 

모처럼 '자녀교육법'에 대한 책을 구입했더니 정체가 불분명한 책이어서 몇자 적었다. 안 사던 책을 사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그래도 책엔 재미있는 내용도 들어 있다. 목사였던 아버지 비테의 결혼관을 아들은 이렇게 요약한다. "아버지는 결혼의 목적이 하나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자녀를 기르기 위한 것인지, 세속적인 다른 그 무언가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의무. "아버지로서의 첫 번째 임무는 자녀를 위해 좋은 엄마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런 뒤에는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쳐야 한다." 그 준비 안에는 '다량의 교육서'를 읽는 일도 포함된다. 나처럼 아이가 클 만큼 큰 뒤에 읽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미리...

 

12.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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