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에릭 라이너트의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부키, 2012)를 사러 서점에 갔다가 손에 든 책의 하나는 금장태의 <다산 정약용>(살림, 2005)이다. 밤에는 오히려 이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책은 작년 여름에 4쇄를 찍었으니까 꾸준히 나가는 셈인데, 사실 다산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예전에 한형조의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세계사, 1996)를 읽은 게 마지막인 듯싶으니 십수년 전이다. 그러다가 책이 눈에 들어온 건 나이가 들어서 동양고전과 한국사 쪽에 좀더 본격적인 관심이 갖게 되어서이다. 젊은 시절 마흔 이후로 미뤄둔 독서계획이기도 했지만.  

 

서울대 종교학과 재직했던 저자가 다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조선의 천주교 전래와 박해에 관해 공부하다가 이렇게저렇게 연결이 됐기 때문이다. 우선 이만채의 <벽위편>. 이 책은 "천주교가 한국에 전래했을 때 유교 지식인들과 조선 정부가 천주교를 배척한 사실에 관한 자료집"이라 한다(조선의 천주교 수용에 대해선 조광 교수의 연구서가 나와 있다). 종교학을 전공한 저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책. 이어서 <벽위편>은 마테오 리치에게로 관심을 이끈다. 명나라 말기 중국에서 활동한 이 예수회 선교사가 저술한 천주교 교리서 <천주실의>를 읽게 된 것이다.

<천주실의>는 천주교 교리를 유교 경전의 사상과 조화롭게 만나도록 한 책이다. 16세기 말, 동양과 서양의 두 사상이 본격적으로 만나서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15쪽)

 

 

어젯밤에 읽은 대목인데, 그래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몇 차례 출간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서울대출판문화원에서 나온 <천주실의>(2010)가 정본에 해당한다.

 

 

 

마테오 리치의 다른 책으론 <중국견문록>(문사철, 2011)과 <교우론 외>(서울대출판부, 2000)이 더 나와있고, 조너선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 1999)이 유용한 평전이다(오래전에 구입하고 완독하진 못했는데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군).

 

금장태 교수가 대학원 과정에서 정약용과 서학에 대해 열심히 공부할 무렵인 1960년대는 다산 연구가 시작되는 단계였다고 한다. 이렇게 진술한다.

당시 북한에서는 최익한의 <실학파와 정다산>(1955)이 간행되었으나 당시에는 그 책을 볼 수가 없었고, 남한에서는 홍이섭교수의 <정약용의 정치경제사상 연구>(1959)가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뒤이어 이울호 교수의 <다산 경학 연구>(1966)이 간행되어 다산 사상의 연구가 시작되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16쪽) 

 

 

1960년대에는 읽을 수 없었다는 최익한의 책이 작년에 나온 <실학파와 정다산>(서해문집, 2011)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남한에서 나온 홍이섭, 이을호 교수의 책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듯싶다. 아무튼 금장태 교수는 다산과 서학의 관계를 연구의 관심사로 삼았지만 당시에는 다산 사상이 서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공박을 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지금은 대놓고 반박을 당하지는 않을 정도로 다산 사상과 서학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상태라고. 그렇다면 저자의 핵심적 관점은 무엇인가.

나 자신이 정약용에게 한발짝씩 다가가면서 뒤이어 깨달은 것은 정약용이 서학의 세계관을 수용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 아니라, 서학의 세계관으로부터 충격을 받고 유교 경전의 세계를 새로운 빛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19쪽)

책의 부제가 '유학과 서학의 창조적 종합자'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다산을 재조명한 연구서가 백민정의 <정약용의 철학>(이학사, 2007)이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한 책인 듯싶은데, '주희와 마테오 리치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란 부제가 핵심을 요약해준다. 이 책과 함께 금장태 교수의 <다산 평전>(지식과교양, 2011)을 또한 장바구니에 넣었다(알라딘은 오늘까지도 주문이 먹통이다). 다산 평전을 검색해봤지만 의외로 본격적인 저작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다산 평전>만 해도 작년에 나온 책이니 이전에는 어떤 책이 읽힌 것인지 궁금하다.

 

 

 

여하튼 정약용과 마테오 리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는 것. 물론 기념비적으로 방대한 저술을 남긴 다산의 대표작 '1표 2서', 곧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만 갖추는 일도 만만치 않다. 나는 <목민심서> 정도만 챙겨놓고 있는데(<흠흠신서>는 절판된 듯하다), 다음 목표가 일단은 <경셰유표1,2,3>(한길사, 1997)이다. <다산의 재발견>(휴머니스트, 2011)까지 가려면 일단은 '다산의 발견'이 먼저일 테니까. 아,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 2011)은 '재발견' 이전에도 읽어볼 수 있겠다. 이미 갖고 있는 책이니까...

 

12. 01. 22.

 

 

 

P.S. 한국 유학과 유학자들에 대한 많은 연구저술을 갖고 있지만 금장태 교수의 주된 연구주제는 '종교로서의 유교'이다. 편역서인 <유교는 종교인가1,2>(지식과교양, 2011)란 물음이 주제를 이끄는 물음이다. 찾아보니 최근작으로는 <한국유교와 타종교>(박문사, 2010)도 나와 있다. 제사를 지내는 종가집이라면 '유교'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겠지만, 나의 관심은 일단 공자나 정약용에 머문다. 그리고 마테오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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