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학술서'라 할 만한 책은 정연태 교수의 <한국근대와 식민지 근대화 논쟁>(푸른역사, 2011). 소개기사조차도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변증법적 지양'이란 제목을 달았다!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정리하는 데 요긴할 듯싶다.   

  

한국일보(11. 10. 08)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변증법적 지양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는가는 국내 역사학, 경제사학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한국현대사학회가 최근 교육부의 역사 교육 과정 개정 작업에 '일제에 의한 근대적 제도의 이식 과정과 우리 민족의 수용'을 포함시키자고 요구한 데서 새삼 드러나듯 이 논쟁은 한국 사회의 이념 대립과도 오버랩된다.

한국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지만 그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로 피어나지 못했다는 식민지 수탈론이나, 식민 지배를 당하기는 했지만 일본의 이식으로 근대화에 진척이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일면을 부각해서 보려 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가톨릭대 정연태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둘러싼 최근 10년간 자신의 논문을 엮은 <한국근대와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서 이 같은 논쟁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고자 한다. 그는 '근대사 굴절에 대한 책임을 손쉽게 외세 탓으로 돌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의 주체적 한계를 직시하고 반성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발전 잠재력과 역동성도 동시에 포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거기에 더해 근대 자체를 비판하는 '탈근대론'도 '민족주의를 제국주의의 쌍생아처럼 취급하여 백안시하거나 민족성ㆍ식민성을 근대성의 묶음 속에 집어넣어 뼈도 없이 녹여 버리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비판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그가 주목한 것은 이 같은 학문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 서양인의 한국근대사 인식이다. 서양인의 왜곡된 동양관 같은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조선과 조선인에 호의적이었든 아니든 간에 이들은 당시 조선 실정에 대해 비슷한 진단을 내린다. 발전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양반ㆍ관료층의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고갈됐고, 민중은 근로ㆍ저축 의욕 감퇴로 나태와 빈곤의 늪에 빠졌으며, 국가 경제는 후진적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생적인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당장은 일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도 대동소이하다.

이 같이 중층복합적인 시대 상황을 조선 후기의 포구 도시인 충남 강경에 대한 미시 연구 등을 통해 재확인하면서 그는 '장기(長期) 근대사론'이라는 새로운 역사상을 제안한다. 한반도의 근대가 해방과 함께 압축적으로 끝났다고 볼 것이 아니라 남북통일까지 미완의 것으로 보자는 문제 제기다. 이론(異論)이 적지 않겠지만 열린 민족주의 등 건강한 민족주의의 실천적 완성이라는 숙제까지 포함한 이 개념이 실익 있는 근대사 논쟁에 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음에는 틀림없다.(김범수기자) 

11. 10. 08.   

P.S. 기억에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 새로운 물꼬를 터준 이는 '회색지대'론을 주장한 윤해동 교수였는데, 이후에 논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됐는지 알지 못한다. 정연태 교수의 책이 가이드가 돼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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