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과 서평가를 주제로 다룬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장정일, 김도언과 함께 나도 언급돼 있다. 기사의 일부는 <기획회의>(300호 특집)에서인가 읽은 듯싶다...   

주간한국(11. 08. 23) 주관적 독서, 서평이 되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김경욱의 단편 '위험한 독서'는 독서치료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직업은 독서가 단순한 정보 습득 차원을 넘어 사람의 삶 자체를 바꾸는 데 목표를 둔다.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비단 소설 속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책에 대한 책'을 쓰는 저자 공통점은 그것이다. 90년대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시작으로 책에 대한 책은 출판계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저자들은 자신의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삶과 사유의 방식, 감성의 결을 말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극히 주관적 취향으로 책을 고르고 읽고 소개한다는 것. 헌데 그 취향이 상당히 많은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들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은 일반 독자에게 일종의 '가이드 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지독한 독서가
대중이 '책에 대한 책'을 인식한 계기는 아마 작가 장정일의 <독서일기>출간 이후 일게다. 그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독서일기>를 내며 서점가에 '책에 대한 책'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작가의 독서 습관은 독특하다. 우선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빌린 책을 읽다 좋은 책을 보게 되면 뒤늦게 산다. 이런 검증을 거치지 않고 산 책 가운데 읽은 뒤 버리는 것도 많다. 저자에게 받은 책도 내용이 시시하면 헌책방에 팔아치운다.

그가 <장정일의 독서일기> 등에서 밝힌 내용들이다. 버리기 전에 그는 꼭 그 책들을 기록해두는 것 같다. 7권에 달하는 <독서일기>와 지난해와 올해 출간된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2권은 습관적인 기록이 아니고서는 써낼 수 없는 책들이다. 물론 연재의 형식을 띤 서평이 많지만 말이다. 그가 쓴 '책에 대한 책'의 특징은 우선 방대한 책 소개다. 7권으로 출간된 <독서일기>는 각 권마다 수십 권에 달하는 책 서평을 묶는다. 형식이 '일기'이니 당연히 주관적으로 책을 읽고 평한다.

'내가 한 권의 낯선 책을 읽는 행위는 곧 한 권의 새로운 책을 쓰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의 양부가 되고, 의사(psedo)저자가 된다. 막연하게나마 어린 시절부터 지극한 마음으로 꿈꾼 것이 바로 이것이다.'

<독서일기> 1권에 쓰인 이 말은 '장정일 표 서평'의 특징을 집약하고 있다. 개별 책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자유분방한 사유, 날선 독설은 '책에 대한 책' 붐을 만들었다. 그렇고 그런 서평집 중에서 그의 책이 단연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이 주관적 독서 방식에 있다. 그가 쓴 '책에 대한 책' 내용 중에는 추천용 뿐 아니라 비판용 서적도 상당수 된다. 저자는 주관적 읽기를 통해 책의 내용을 검증하고, 비판하고, 요약한다.

<독서일기> 시리즈는 '책이 지식으로 축적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부분 번역 소설과 재즈관련 도서에 관한 서평으로 채워진 1,2권에서 시작해 2000년대 들면서 그의 독서목록은 점점 더 다양해진다. 2006년 <공부> 이후 펴낸 일련의 서평집에서, 장정일의 이런 독서 방식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공부>는 인문, 사회과학서를 주로 소개하며 우리사회 현실 문제를 다룬다. 이는 이후 낸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에서도 이어진다. 



장서가의 서재
장정일의 독서 습관이 '읽고, 버리기'의 방식이라면, 이현우의 독서 습관은 '쌓아두기' 방식이다. 그는 1만 권이 넘는 책을 집과 서재, 두 군데로 나눠 보관하고 있다. 그의 서평은 인문, 사회과학, 사상서에 집중돼있는데, 이런 편독에 대해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서평 책을 고른다고 답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들은 국내 지식인 사회서 가장 '핫'한 책이기도 하다. 그는 전공인 러시아문학 이외에도 들뢰즈, 지젝, 랑시에르 등 해외 지식인들의 국내 번역본에 관해 가장 먼저 서평을 올린다. 웬만한 출판, 문학 기자보다 이들의 출간 소식을 먼저 알고 있을 정도다. 그가 서평 쓰기를 통해 바라는 것도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터뷰 때 그는 "대학과 소수 고급 독자, 일반 대중독자로 나뉜 국내 인문학 시장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앞서 소개한 인터넷 카페 <비평고원>에서 활동으로 그는 젊은 지식인 사회에서 회자됐고, 그의 첫 서평집은 이미 인터넷에서 서평꾼으로 유명세를 탄 후 출간됐다. 첫 번째 서평집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블로그와 카페에 올린 글을 묶어 낸 책이다. 두 번째 서평집 <책을 읽을 자유>는 잡지 등 기성 매체에 발표한 글이 주를 이룬다. 첫 번째 책이 에세이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두 번째 책은 책 그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두 권의 서평집을 읽으면, 그가 책을 고르고 읽고 쓰는 동선이 그려진다.

1만 권의 책을 모으고, 최신 번역된 사상서의 리뷰를 가장 빨리 올리는 비법이 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이른바 '초병렬독서법'이다. 10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사고를 만드는 독서방법인데, 이 달인의 비법은 <책을 읽을 자유>에 자세히 나와있다. 경우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읽는 '발췌독'도 한다. 책을 읽고 서평할 때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내용을 정리한다. 복사할 때 밑줄이 안 나오기 때문이란다. 번역서는 원서와 함께 본다. 사상서는 저자의 책을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다음 책은 다 읽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책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라"고 했다. 어느 선까지 저자를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겠지만, 이후에는 자기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이용하라고 말이다. 그는 서평에서 노예 부려 먹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문학일기
2000년대 초반 출판평론이 관심을 끌면서 표정훈, 최성일 등 전문가들의 서평집이 봇물처럼 출간된 적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물론 '책'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요컨대 하루에도 수십 종씩 쏟아지는 책 중에서 양서를 가려 소개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임무였고, 사람들이 이들의 글에 주목한 이유였다.

최근의 서평집은 책보다 책을 읽고 쓴 저자의 '글'에 방점을 찍은 책들이 인기를 누린다. 소설가 김도언의 <불안의 황홀>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출판사 열림원의 편집장이기도 한 그는 줄곧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일하며 작품을 써왔다. 때문에 그의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독특하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쓴 일기를 엮은 이 책은 작가가 그동안 인연을 맺은 수많은 문인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인상을 솔직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독서목록은 대부분 시와 소설 등 문학에 집중돼 있는데 문단 안팎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저자 개인의 에피소드와 주관적 독서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를테면 저자는 이어령, 김승옥, 천양희, 김정환, 김훈, 이인성, 고종석, 이순원, 황인숙 같은 그가 존경하는 문인은 물론 김숨, 오은, 박진성, 함기석, 송승환, 안현미, 이준규, 김태용 등 같은 또래의 문인들과의 에피소드를 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여기에 저자가 매혹 당한 동서고금 책들에 대한 감상이 덧붙여진다. 그가 읽은 책에 대한 노골적인 옹호와 편애 혹은 비판과 조롱의 내레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영민하면서도 섬려한 작가의 문학적 영혼이 과연 어디에서 기원해, 어디를 경유하고,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이윤주기자) 

11. 08. 25.  

P.S. 어쩌다 보니 인터넷 서평꾼에다 서평가('도서평론가'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노릇을 하게 됐지만, 이런 기사는 내가 주관적으로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객관화해서 보여준다. 이런 자의식 때문에 애써 구해보는 책들도 있는데, 물론 '동업자'들의 책이다. 최근에 나온 것으로는 박찬운의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한울, 2011), <최재천의 책갈피>(폴리테이아, 2011), 그리고 한윤정의 <명작을 읽을 권리>(어바웃어북, 2011) 등이 오늘 배송받은 책이다. 저자는 각각 법대 교수와 변호사, 그리고 현직 기자. 그럼에도 '책에 대한 책'을 쓴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보람과 애로를 느끼지 않을까 싶다. 김도언의 <불안의 황홀>도 주문을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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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2011-08-25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기본소양으로서 꽤나 좋고 풍부한 정보를 담고있군요..서지정보도 마음에 들고요

로쟈 2011-08-25 22:58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책이죠. 사상가 사전이라고 할 만한...

2011-08-25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국사람 2011-08-2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책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쌓아둘 자리나 있는지....

로쟈 2011-08-26 09:00   좋아요 0 | URL
만권부턴 장서가라고 하는 모양인데, 엄청나진 않습니다. 둘데가 없을 뿐이고(분산해놓고 있어서 제때 책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하기가 곤욕스럽지만요.--;

소설가 2011-08-2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해 주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