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인생 반고비'를 음미한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이젠 '내리막길'이고 가속도도 붙지 않을까 싶다. '노년'이 더이상 상상의 나이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신체연령은 더 근접했을 수도 있고). 인구학적 전망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이상 노인 인구가 한동안은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것이 분명하다. 이 역시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현실'이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한 준비가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고령화사회의 모습을 앞당겨 보여주는 일본에선 '무연사회'란 용어도 등장했다고 하는데, 어떤 얘기인지 기사들을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1. 08. 01) [한기호의 다독다독]회색 쇼크와 단카이 세대

“전체 인구의 40%가 65세 이상 노인이 된다. 가게, 거리, 자동차 안은 두 종류의 은퇴자 세대로 가득 차게 된다. 젊은 세대는 60~80대 초반일 것이며, 나이 많은 세대는 100세가 다 된 사람들로서 이들의 수는 급격하게 많아진다. 이들은 주말에도 거리를 가득 채우고, 그 숫자는 젊은이의 수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

 

고령화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테드 C 피시먼의 <회색 쇼크>(반비)가 그리고 있는 2050년의 일본 모습입니다. 여러 통계들이 기준연도로 삼기에 2050년은 인구학사상 가장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네요. 초고령 사회의 일본은 2050년에 100세 이상인 사람만도 100만 명에 이를 것이랍니다.

일본은 높은 이혼율, 핵가족화, 체면, 길어진 수명 등으로 노인 고독이 심각합니다. 혼자 살고 있는 400만 명의 노인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극심하게 소외되고 있습니다. 고독사(무연사)한 사람의 시체가 몇 달 동안 방치된 채로 썩어가면서 뿜어내는 독성을 차단하기 위해 시체를 찾는 팀이 가동되고 있기도 합니다. 

노인들의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일본인지라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한 거시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없지 않습니다. 미타 마사히로는 <단카이(團塊) 노인>(2004년 출간)에서 “단카이 노인들을 태평양에 갖다버리지 않는 한 2050년에 일본경제는 무조건 파산한다”는 극언까지 했을 정도로 일본 고령화의 핵심에는 단카이 세대가 놓여 있습니다.

단카이 세대는 넓게 보아 패전 후인 1947년부터 1951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1085만 명이나 됩니다. 이 세대는 전쟁과 물자부족을 모르고 자란 최초의 세대이자 새로운 기기와 생활환경에서 자란 최초의 세대입니다. 철이 들자 텔레비전이 있었고, 성인이 되자 마이카가 보급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는 컴퓨터가 등장했습니다.

단카이 세대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이긴’, 즉 아들과 며느리였던 젊은 시기에 부모 세대와의 권한 다툼에서 이긴 세대입니다. 고도 성장기에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옮겨 관공서와 기업에 근무하면서 핵가족으로 살았기에 친척이나 이웃과의 교제를 모르고 자랐지요. 하지만 부모가 된 단카이 세대는 승부를 겨룰 상대조차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단카이 세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그리고 집단주의에 물든 일본식 경영의 ‘회사형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혈연과 지연을 대신한 것은 오로지 사(社)연이었습니다. ‘회사’와 ‘일’이라면 만사형통한다는 발상에 빠져들었던 세대입니다.

단카이 세대는 거대한 시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붐이 일어났습니다. 록 뮤직, 모터사이클, 청바지와 티셔츠, 유니크로, 다코짱, 훌라후프, 욘사마 등은 단카이의 구매력과 행동력의 결과물입니다. 그들은 노동력으로서 압도적인 다수였고, 선거의 표밭과 독서시장에서 늘 주류였습니다.

“단카이 세대의 뒤에는 풀 한 포기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시대를 바꿔왔습니다. 이 세대의 첫 주자들이 2007년에 60세 정년을 맞이하기 전인 2004년에 고령자의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정년을 65세까지 끌어올리거나, 계속 고용 제도를 도입하거나, 아예 정년을 폐지해버렸습니다. 비록 촉탁과 파트타임의 형태였지만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며, 깎인 임금은 연금으로 벌충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안달인데도 그들은 자신의 앞길만은 잘 닦아놓았습니다.

2012년은 그들이 65세 정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겨냥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고독사가 엄청난 사회문제가 됐음에도 미시적이고 개인적 차원의 대응을 촉구하는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중 최근 국내에 출간된 책 두 권만 살펴보겠습니다. 



인연이 끊긴 무연사회의 삶과 죽음을 다룬 <사람은 홀로 죽는다>(미래의창)의 저자인 종교학자 시마다 히로미는 “무연사회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롭고 수많은 가능성으로 수놓인 사회”라고 말합니다. 홀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일지라도 자유롭고 풍족함으로 가득한 인생으로 만들어간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랍니다. 



37세에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를 쓴 팔순 노인의 작가 소노 아야코는 <당당하게 늙고 싶다>(리수)를 작년에 내놓았습니다. 노인 지혜를 활용해 진정한 자립과 행복의 주체로 서고, 죽을 때까지 일하며 살며, 늙어서도 배우자와 자녀와 잘 지내고,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고독과 사귀며 인생을 즐겁게 지내고, 늙음·질병·죽음과 친해지고, 신의 잣대로 인생을 보는 법 등을 알려주는 이 책은 6개월 만에 300만 부나 팔렸습니다.

세계 최초의 ‘호로(好老)문화’의 나라라지만 노인의 삶마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놀랍기만 합니다. 하긴 단카이는 그들에 대한 모든 부정적 예측을 긍정적으로 돌려놓은 세대이긴 합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의 취직난을 구인난으로 바꾸고,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던 1970년대의 주택난을 조립식 주택과 맨션 건설로 해결하고, 정년을 맞이하던 2007년의 연금파탄 우려마저 종신고용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노동으로 맞섰습니다. 그런 그들이기에 어쩌면 단카이 세대의 새로운 황금시대가 이제 다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고령화 문제가 일본 못지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주간한국(11. 07. 27) 싱글 인생, 우리는 '무연사회'로 간다 

죽음을 앞둔 춘화의 소원은 옛 써니의 멤버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이윽고 하나 둘 모인 7공주들은 대부분은 순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에 '알고 보니 기업체 사장'이었던 춘화는 죽기 전에 친구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남긴다. 멤버들은 행복해하며 춘화의 영정 앞에서 보니엠의 'Sunny'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상반기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 <써니>는 훈훈한 결말로 여자들의 우정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 '판타지'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은 병실에서 홀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은 춘화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돈을 모았어도 임종을 지킬 한 명의 가족도 없었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 행복했을까. 



골방에서 고립된 청춘들
물론 춘화처럼 모든 골드 미스가 독신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성과의 경제적 격차가 줄다보니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희미해진다. 출산 후 육아의 문제도 남아 있다. 남편의 수입만으로 생활이 어렵다면 아내는 또 다시 생계의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결혼 자체가 제약을 가지는 점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싱글 문화가 전 세대의 남녀 모두로 확산되고 있다. 독신 문화가 퍼진 이래 그 말의 대상은 주로 30대에 한정됐다. 하지만 지금은 독신의 길을 걷고 있는 40~50대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자의가 아닌 독신 인생을 사는 젊은 세대는 더 많다. 장기적인 불황으로 내 집 마련은커녕 좁디좁은 원룸이나 고시원의 쪽방에서 타인과 단절된 채 사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언감생심의 대상이다.

특히 고시원은 원래 취업 전 한 번쯤 '잠깐 머무는 공간'으로 기능했지만, 이제는 실업자와 직장인 등 모든 집 없는 세대들이 혼자 살아가는 대안거주공간이 됐다. 이런 '1인 가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고립시킬 수밖에 없다. 



고시원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시도한 책 <자기만의 방>에서 저자 정민우 씨는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원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세대의 단절된 삶을 포착한다. 그 결과 고시원의 생활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좁은 방도, 공동생활의 불편함도 아닌 비인간성이라는 대답을 얻는다. "누가 사는지는 알아요. 그 방 안에 틀어박혀 뭘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중략) 친한 사람 … 그런 거 없고, 그냥 고독했어요. 진짜. 개미굴 안에 한 명씩 갇혀서 있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네모나게 구획된 방에 들어가 살고 때로는 방과 방 사이에서 마주치지만 서로 인사도 나누지 않는다. 손짓이나 음성을 물론 눈짓이나 표정으로도 서로 아는 체하지 않는다. 아는 척을 떠나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각자가 방에서 눈치를 보기까지 한다. 저자는 이런 고시원 생활의 특징을 '익명성'과 '무관심성'이라고 규정지으며,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관계는 부재하는 고시원은 사람들을 '유령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무연사회에 대비하는 방법
지난해 NHK 특집 방송을 통해 알려진 '무연사회(無緣社會)'는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홀로 살다 죽은 고인의 유족이 유체 인수를 거부해 조문객도 없이 치러지는 장례 과정은 '장례식'보다는 '사체 처리' 과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간된 <사람은 홀로 죽는다>에서 무연사회 문제를 다룬 저자 시마다 히로미는 "사람들이 무연사회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 '고독한 죽음'이다"라고 지적한다. 죽은 후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두려움보다도 화장된 후 아무런 인연도 없는 곳에 무의미하게 안치되는 상황이 너무 고독하다는 것이다.

당시 아사히 신문도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사회'는 이미 막을 내렸고 혈연·지연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는 '고족사회'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20년 후에는 전체 가구 중 독신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달할 것이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2010 인구주택 총 조사'에서 1인 가구는 414만여 가구로 5년 동안 30%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속도를 감안하면 1인 가구가 가장 일반적인 가구 형태로 떠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무연사회에서 지금 당장 위험에 빠진 세대는 노년층이다. 독거노인이 1백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고독사(孤獨死)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러자 일본처럼 가족 대신 유품을 정리해주는 전문 업체들도 국내에 생기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옆집에 사는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아 고독사하는 경우는 몇 년 전부터 있었지만, 마지막 마무리까지 타인의 손에 맡기는 세상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이제 무연사회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 개인적인 삶을 중시하는 도시 생활, 하나의 트렌드가 된 싱글족, 가족의 해체와 맞물려 무연사회는 젊은 세대가 미리 준비해야 할 현대인의 미래상이 됐다.

그래서 시마다 히로미는 "도시생활에서 무연사회의 도래는 필연적"이라고 말하면서 "현대인들이 막연한 공포감에 휩싸여 현실부정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무연사회의 삶과 죽음에 관한 진실을 정확히 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송준호기자) 

11.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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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2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3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지 2011-08-13 00:23   좋아요 0 | URL
도시 공동체 운동이 무연사회라는 미래를 준비하는 한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라딘 서재도 훌륭한 사이버 공동체이지만요^^ 실제로 뜻과 애정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가까이 모여 서로 보살피며 사는 대도시 속 작은 마을들을 리좀처럼 이루어간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로쟈 2011-08-13 09:17   좋아요 0 | URL
무연사회의 도래는 필연적이란 의견도 있기에 대책이 가능한지는 두고봐야 할 듯해요. 대도시 속 작은 마을들은 이상적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