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를 모르는 독자라면 '다미가요 제창'이란 제목에서 연상되는 게 별로 없을 것이다. '군주(君)의 노래'를 뜻하는 ‘기미가요’의 상대어로 '백성(民)의 노래'를 뜻한다고 한다. 원래 쓰는 말인지 신조어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다미가요 제창>(삼인, 2011)이란 책이 지난주에 나왔는데, 저자 정혜영은 재일 조선인 사회학자이고, 역자 후지이 다케시는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일본인 역사학자이다(알고보니, 사카이 나오키의 <번역과 주체>(이산, 2005)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무심코 지나치려 했는데, 역자 후지이 박사가 언젠가 한 학술대회에서 본 적이 있는 연구자다(성실하고 명석한 학자란 인상을 받았다). 역자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다중국적을 갖도록 하자는 저자의 제안과 함께 '뉴라이트'에 대한 역자의 평가가 인상적이다.    

<民が代>斉唱-アイデンティティ・国民国家・ジェンダー-

한겨레(11. 05. 25) “다중국적, 국민 아닌 민중 되기 위한 생존 전략”

분명 우리말 책인데 “정영혜가 쓰고 후지이 다케시가 옮겼다”고 한다. 지은이와 옮긴이가 뒤바뀐 것 아닌가? 최근 출간된 <다미가요 제창>(삼인 펴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지은이와 옮긴이를 주목해야 한다. 이 책은 재일조선인 사회학자 정영혜씨가 일본어로 쓰고, 한국에서 한국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인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가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일본을 소재로 근대국민국가를 비판하면서 그 경계선을 둘러싼 정치를 사유하는 책의 내용과도 어울리는 절묘한 조합이다. 23일 서울 계동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만난 후지이 다케시(사진) 박사는 책을 옮긴 이유에 대해 “일본에서 일본인이라는 ‘다수자’로 살아온 내게, 정영혜는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일조선인이자 여성이라는 이름의 ‘소수자’로서 지은이는 일본이 근대국민국가로 나아가며 만들어낸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그 속에 담긴 차별의 문제를 연구했다. 그의 비판은 민중을 다수자와 소수자로 분단해 억압하고 착취하는 근대국민국가의 구조에 모아진다. 패전 뒤 일본은 1952년 4월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에 맞춰 옛 식민지 출신자들의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했다. 그리고 이틀 뒤 ‘일본 국적을 가진 자’라는 국적 조항을 적용 대상으로 명시한 ‘전상병자 전몰자 유족 등 원호법’을 공포했다. 지은이는 이것이 식민지배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국적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주민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체제의 구축이었다고 지적한다.

재일조선인 등 소수자의 비판을 소중히 여긴다는 일본 사회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존재는, 오히려 이 체제가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들은 ‘소수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몰랐던 비판을 할 수 있고, 더 나은 사회로 가려면 이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생각이 결국은 소수자를 타자화하는 구도를 더욱 고착화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지적은 단일민족주의, 단일문화주의뿐 아니라 다문화주의 역시 차별과 배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비판과도 연결된다. 다양한 문화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미리 분류된 소수자들에게 정체성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다시 다수자가 이를 공인해주는 구조란 것이다.

이에 대해 후지이 박사는 “소수자를 타자화하지 않고선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다수자의 환상을 산산이 깨뜨린다”고 평가했다. 정씨의 논의는 소수자에 의한 다수자 비판에 머물지 않고 권력구조 자체를 다시 검토해 대안을 찾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정주 외국인은 왜 시민권 획득이 불가능한가? ‘흑인’ 페미니스트와 ‘백인’ 중산층 페미니스트들의 간극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전쟁 때 국외로 강제징용된 일본인과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조선인 사이엔 소통 지점이 없을까? 이와 같은 다양한 물음은 일본뿐 아니라 근대국민국가 체제 자체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대안은 무엇인가? 지은이는 국민국가나 국적과 같은 경계에 얽매이는 대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시민권’과 같이 거주 사실에 의거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자고 한다. 국가가 쥐여주는 정체성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정체성으로서 ‘다중국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은이는 자신의 딸을 3중 국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후지이 박사는 “다중국적은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국민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민’(民)으로서의 생존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군주(君)의 노래인 ‘기미가요’를 백성(民)의 노래인 ‘다미가요’로 바꾼 책 제목에는 이런 실천적 뜻이 담겼다. 후지이 박사는 “국민으로 환원될 수 없는 민중이란 존재가 있다는 것이 정영혜 주장의 핵심”이라며 “일본 못지않게 국가주의, 단일민족 인식이 강한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최원형 기자) 

■ 후지이 박사가 본 ‘뉴라이트’

“신자유주의 내세우며 민족주의는 깨려 해”
후지이 다케시(39) 박사는 지난해 ‘족청(조선민족청년단)·족청계의 이념과 활동’이라는 논문으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현대사, 특히 1950년대가 그의 연구 주제다. 논문에서 그는 ‘반공민족주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던 족청의 이념적 좌표와 50년대 족청계 인사들의 활동을 파헤쳤다. 구도만 보자면 최근 한국현대사학회에서 주목했던 ‘반제반공’의 역사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역사 과정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는 ‘이념적’ 관점과 다르게 당시 반공주의의 파시즘적 성격과 세계사적 위치, 이승만 정권의 동맹자로 활약하다가 어떻게 미국의 이해와 충돌해 몰락했는지 등을 세세하게 풀어냈다. 남한의 ‘친미반공’이 정부 수립 직후부터 당위적인 조건처럼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이들 반제반공 세력이 제거되면서 주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후지이 박사는 한국현대사학회 출범 등 역사 분야에 대한 뉴라이트의 활동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높아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방어적인 행위에 나서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방어적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 말하기보다는 현실에 역사를 끼워맞추는 결과론적 접근을 하게 되고, 결국 제대로 된 역사 콘텐츠를 갖출 수 없다는 비판이다. 대안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한국 뉴라이트 세력의 특징은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점이라고 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전형적인 민족·국가주의인데,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자유시장경제를 지상과제로 내세우면서 그 걸림돌이 되는 민족주의는 깨려고 드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대신 “정치를 없애고 강한 행정 기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특성” 때문에 국가주의에 대한 강조는 더욱 두드러진다고 한다. 후지이 박사는 “그러나 역사는 ‘그때 당시’가 기준이 되어야지, ‘지금의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며 역사학의 기본적인 원칙을 되새겼다.(최원형 기자) 

11.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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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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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1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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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1 0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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